어제는 파리의 한낮 기온이 23도 였답니다.
롤랑 가로스에서는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가 4강 진출도 못하게 된 게임을 치렀지요.
프랑스 선수 쏭가에게 3 대 0으로 패했다우.
페더러는 마치 이 게임을 패해 줘야만 한다는 듯이 그답지 않은 게임을 했어요.
프랑스 오픈 테니스 경기는 대회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1/4 de Finale 게임이 많으니 볼만 했지요.
오늘 게임도 기대된답니다.
섭씨 27도가 예고 되었으니 선수들은 땀이 비오듯 하겠네요.
요즘은 내가 애용하던 스마트폰이(통화는 안되고 인터넷 검색만 하던) 절명해 버려서
나의 한밤중과 새벽녘의 행복한 단편읽기가 일시 멈춥이랍니다.ㅠㅠ
그래서 책을 읽어요. 어제 아침 공무도하(김 훈)를 다 읽었기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읽고 싶어서 온 집을 뒤져도 보이질 않네요.
내가 이집에서 연전에 읽었거든요. 아마도 창고에 쌓여있는 책더미 속에 누워있나 봐요.
그래서 분당에서 읽은 '비행운'을 다시 읽어요.
무진기행 책 찾으러 창고속 기행을 해야겠어요.ㅎㅎ
어제, 저녁 여덟시가 넘은 시각의 공원이에요.
그 예쁘던 봄꽃들이 모두 사라지고, 정원 둘레에는 보라, 노랑 아이리스가 흠뻑 폈네요.
공원 숲 속 벤치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비행운', 작가 김애란은 겨우^^ 1980년생이에요.
그 나이답게 어찌나 상큼 발랄 신선한 소설집인지요.
두번째 읽는 책인데도 나는 그녀의 상큼한 싱그러움에 또다시 매료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파리의 어제 일몰시간은 9시 40몇 분이라고 했어요.
해질녘의 긴 그림자, 해질녘의 붉은 기운, 해질녘 쏘공원의 까마귀 울음소리...
정말 좋아요. 눈물나게 좋아요.
가운데 긴 그림자는 나예요.ㅎ
숲 속 나무아래서 책을 읽다가 추워서 볕으로 나와 저 노천 카페에 앉아서 읽었다우.
햇볕이 없는 그늘은 추워요. 여름에도 그늘은 서늘한 곳이 파리거든요.
내가 어제 아침에 읽기를 다 마친 김훈의 '공무도하公無渡河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중
그의 섬세한 표현을 옮겨볼게요.
***
저무는 해가 능선을 스치면서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
수면에서 명멸하는 빛과 색 들의 변화를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우는 해에 끌리는 쪽으로 빛들은 떼지어 소멸했고 소멸의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신생과 소멸을 잇대어가며 그것들은 어두워졌다.
물 위에 뛰어오른 작은 물고기들이 다시 물에 잠기는 그 짧은 동안에,
물고기 비늘과 눈알에서 빛은 색으로 태어났다.
시간이 빛과 색을 가장자리 산그늘 쪽으로 끌어당겼고,
빛이 저무는 시간과 합쳐지면서 푸른 저녁이 수면 위로 퍼졌고,
색들이 그 위에 실려서 흘렀다.
산그늘에 덮여서 빛이 물러서는 가장자리 수면에서 색들은 잠들었고,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 물의 주름사이에서 튕기는 빛이 잠든 색들을 흔들어 깨웠다.
어두운 수면에서 빛들은 무슨 색으로 잠드는 것인지,
바람에 흔들려 다시 깨어나는 색은 잠들기 전의 색이 아니었다.
부서져서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그것들을 빛 또는 색이라고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 그것들은 다시 부서지거나 새로 태어나서 말 너머에서 명멸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짧고, 정처없었다.
***
강가에서 살아본 나는 저 표현이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안다우.
정말 저렇거든요. 현학적이게도 여겨지고 추상적인 감상에서 빚어진 문장 같지만
저무는 해가 수면 위에서 빚어내는 빛의 움직임은 김훈 님이 표현한 것보다
더 섬세하고 더 정처없답니다. ㅎㅎ
노목희는 소설속에서 미술교사로 등장해요.
기자가 사건 사고 기사를 모아다가 부려놓은 듯한 '공무도하'는
미문을 읊어내는 김훈이 기자였을 거라는 것을 눈치채게 하지요.
그런데 김훈이 기자였던가요? 기자였다해도 사회부 기자는 아니었으련만..
책을 읽는 즐거움이 저런 곳에 있어요.
사람살이나 스토리의 흐름, 반전, 결과가 주는 흥미로움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표현(문장)을 만나는 때의 그 환희로움 깃든 울고싶은 충동이
어떤 정서의 오르가즘을 가져오지요. 그래서 끝내는 울어버리는...
영화나 책이나 마찬가지예요. 스토리 보다 더 나를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장면들,
오묘한 순간이 빚어내는 짜릿한 재치가 주는 매력.ㅎㅎㅎ
마냥 횡설수설이옵니다. 눼~~^*^
6월 들어서는 쏘 공원의 문닫기 시간이 10시네요.
아홉시 반,
읽던 책을 덮고 푸른 저녁이 펼쳐지기 전에 돌아가려고 일어섰습니다.
푸른 저녁이면 나는 정처없이^^떠돌아다니는 버릇이 있거든요.ㅋ
까마귀가 날아듭니다.
해는 서산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이렇게 또 어제 하루가 갔답니다.
아들 메일에는 '엄마 집이 엄마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라 쓰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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