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어딘가 어딘가에는

eunbee~ 2012. 3. 1. 00:59

 

 

 

 

어딘가, 어딘가에는

 

이 세상의 모든 생년월일은 지나갔다.

그러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딘가에 시간이 고여 있을 것 같다.

아직 손가락을 펴지 않은 태아처럼.

 

주민등록번호보다 긴 숫자, 그런 암호, 그런 긴 꼬리가 휘어지며 내 왼쪽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이 감촉은? 밤의 공중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소원 같은 것이었을까. 왼쪽이여, 텅 빈 왼쪽이여, 텅 빈 오른쪽이여,

 

나는 지상에서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어딘가에는 곧 출발할 갈색 말이 매여져 있을 것이다.

곧 출발할 기차, 곧 출발할 비행기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언젠가…… 누군가…… 갑자기 누군가는 시간을 끊은 듯 나타나는 것이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를 점치기 위해 가장 검은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은 모두 그럴 듯한 이야기꾼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이야기를 꾸며보는 것이다.

 

 

詩--- 김행숙

 

 

 

 

 

시의 운율과 언어들이 고스란히 육화되면, 우리 생의 어떤 가능성과 순간들이

반듯하게 잘린 나무의 단면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시인을 견자見者라고 부르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그런 시인이 될 수 있다.    ---- 이기호 교수의 글 중에서.

 

 

 나무아래 앉아 읽던 책을 덮고 꽁지 긴 파랑새가 이나무 저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오후 한나절의 햇살을 내 피부와 내 마음과 내 영혼에 가두어 들이다 보니

해가 저만치 기울었다.

 

하루라는 단위의 시간들은

하루만큼의 무게와 그림자를 드리우고

기억밖으로 날아간 새의 언어를 닮은 몸짓으로

영원으로 잦아 들고 있다.

나도 내 시간밖에서 서성이는 발자욱만큼의 부피로

하루를 접어야 겠다.

 

2012년 2월 마지막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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