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작은 별 아래서

eunbee~ 2012. 2. 24. 21:30

 

 

 

작은 별 아래서


ㅡ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ㅡ

우연이여, 그대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합니다.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합니다.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마세요.
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서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대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칩니다.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칩니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세요.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후벼내어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세요.
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합니다.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합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감아 줘요.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사막이여, 제발 눈감아 줘요.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수고스럽게 달려가지 않는 나를.
그리고 그대, 아주 오래 전부터 똑같은 새장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독수리여,
언제나 미동도 없이 한결같이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비록 그대가 박제로 만든 새라 해도 내 죄를 사하여 주오.

미안해요, 잘려진 나무여.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들고 있는 다리에 대해.
미안해요, 위대한 질문이여. 초라한 답변에 대해.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세요.
위엄이여, 내게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존재의 비밀이여, 당신의 옷자락에서 빠져나온 실밥을 잡아 뜯은 걸 이해해 주세요.
영혼이여, 나 그대를 자주 잊었더라도 기분 나빠 마세요.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세요.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세요.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 주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 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 가며 열심히 짜맞추고 있는 나를.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 폴란드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 얼마전에 돌아가신 시인의 영면을 기도하며....**


                                                                                                                                    사진 ㅡ Parc de Sceaux에서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여,

용서하세요.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그저 한 개의 별이라 하지않는 나를....

 

땅 위에 아름답게 서있는 나무여,

용서하세요.

자주 그대를 물 속으로 이끌고 가는 나를...

 

 

ㅡ eunbee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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