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월든 호숫가에서도 티티새가 울었을까?

eunbee~ 2012. 2. 29. 02:41

 

 

 

이제 기차가 지나가고 그와 함께 바쁘게 설쳐 대는 세상도 지나가 버렸다.

호수의 고기들도 이제 기차의 덜컹거림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홀로라는 느낌에 젖어든다. (중략)

 

바람이 알맞은 방향에서 부는 어떤 일요일에는 종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이종소리는 넓은 숲을 지나올 때 하프를 켜듯 숲속의 솔잎을 하나하나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떨리는 음색이 가미되어 내 귀에 들려 왔다.

들릴 수 있는 최대의 거리에서 들려 오는 모든 소리는 '우주의 가야금'의 공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동일한 음향효과를 낸다.

그것은 마치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이 중턱의 대기로 인하여 감청색의 빛깔을 띠게 되고,

그래서 우리 눈에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종소리의 경우 나에게 들려 온 선율은 공기에 의해 팽팽해진 선율이며,

솔잎을 포함한 숲의 모든 잎사귀들과 이야기를 나눈 선율이며,

자연의 원소들에게 붙들려 조율된 다음 계곡에서 계곡으로 메아리친 선율인 것이다.

메아리는 어느 정도 독창적인 소리이며 바로 여기에 메아리의 마력과 매력이 있다.

메아리는 종소리 중 어울릴 가치가 있는 것을 되울린 것일 뿐 아니라 그 일부는 숲 자체가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즉 숲의 요정의 속삭임과 노래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월든 Walden - 중 일부

 

 

 

 

 

 

 

10년 전에 구입해서 읽고 책장에서 잠재우던 이책을 이번에 파리에 오면서 가지고 왔다.

다시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틈틈이 다시 읽은 월든은 이책에 대한 나의 감상이

한결 깊어졌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었다.

 

나는 자주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고는 했었다.

소로우처럼, 니어링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것은 생각을 너머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닥 절실하지 않은 욕망이라고 말해 두는 것이 옳겠다.

그쪽으로 한발 들여놓을 생각은 않고 꿈만 꾸면서 늘 이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동문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내게 자주 말한다.

'온세상을 여행하고 다니니 너는 좋겠다' 라는 류의 이야기를...

그때 내가 하는 대답은 늘 똑 같다.

소로우의 용기와 지혜가 나에게 있거나, 내게도 헬렌 니어링같은 행운의 인연이 있었다면

나는 결코 세상을 떠돌지 않을 거라고....

그들이 살던 삶이 곧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고...

 

변명치고는 참으로 그럴싸하고 근사한 변명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내꿈이 담겨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진실한 말이다.

나는 소로우처럼 살고 싶고 헬렌 니어링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곳 나의 아쉬람에 앉으면 마치 소로우가 된 것처럼 흡사한 감상에 빠져서 앉아 있고는 한다.

 

티티새가 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창밖 나무가지에 앉은 티티새 한마리는 목청 다듬어 노래하고 있다.

프랑스의 봄은 티티새 노래소리에 실려 오는 듯하다.

먼동이 트기전의 새벽부터 날저문 저녁까지 티티새는 맑은 소리로 예서제서 쉬임없이 노래한다.

소로우의 월든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소리다.

그래서 티티새의 영롱한 노래를 월든과 함께 여기에 올려 본다.

티티새 소리를 들으니 이런 포스팅이 하고 싶어졌다.ㅎㅎ

(내가 늘 휘파람새라고 내맘대로 부르던 새는 티티새라고 한다. 큰따님이 알려준 저 새의 진짜 이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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