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저녁놀에서 아침노을로 이어지다.

eunbee~ 2010. 6. 18. 16:36

파리를 떠나던 날은 햇빛이 눈부셨습니다.

아침부터 엄마의 귀국길을 배웅하느라 큰딸내외는 차를 몰아 안토니로 왔지요.

그들의 수고와 작별인사 끝에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고

오후 1시 30분 예정이었던 테이크오프는 15분 간의 착한 딜레이를 기록하고

육중한 쇳덩이가 신나게 드골 공항의 활주로를 도움닫기 하더니 쌩~하니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언제부턴가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를 접고

드나들기 편한 복도쪽을 고집하는 나에게 그날 배정된 자리는 윈도우였습니다.

아뿔싸~

이번 여행은 쉬~도, 간간히 벌어지던 맨손체조도 몽땅 포기해야겠구나.

체념을 잘하고, 주어진 것을 즐기자 라고 생활신조를 정한 나는 기쁘게 윈도우를 접수했습니다.

 

비행, 비행, 비행소녀가 아닌 비행기탄 은비할머니의 긴 비행~

어느덧 시간은 해질녘

창문너머 멀리 보이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황혼이 지기 시작합니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다시 창밖을 봐도 엷게 짙게 번갈아가며 오랜지빛으로 채색되는 하늘끝자락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러시아상공을 날고 있다고 생각될 즈음, 잠시 백야를 연상하게 해 주는 빛과 공기의 투명함과

이루 형용키 어려운 우주의 신비로운 색채들이 나를 황홀케했습니다.

두어시간을 그렇게 간접 백야?를 경험케하더니 다시 북쪽하늘이 붉어졌습니다.

사라졌던 황혼이 다시 시작된 것이지요.

시베리아 벌판이 몽땅 황혼에 젖고 있는 시각입니다.

 

또다시 비행, 비행, 계속 비행...

몽골 상공에서는 그믐달이 투명한 노란빛을 안고 비행방향을 정면으로 해서 11시방향에서

몇시간을 그렇게 우리의 비행을 인도하며 우주공간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그믐달을...나도향 님이 보던 그 그믐달을, 나는 기내에서 싫도록 지치도록, 고개가 뻐근해지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달과 함께 별도 하나 나왔습니다.

별*스*럽*게 반짝이는 별은 북쪽 하늘에서 찬란한 윙크로 역시 우리의 비행을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와~ 어쩜 그리도 맑은 별빛이던지.....

 

몇시간을 또 그렇게 흐르게 버려두니,

이제는 서서히 동쪽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몽골상공에서 남쪽으로 기수를 꺾은 우리는 밝아오는 극동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그믐달은 보이지않고, 우주공간은 안개로 희뿌옇습니다.

안개인지 구름속인지... 낸들 알길이 없지만^^, 구름속이 안개속이고 안개속이 구름속인 것을....

 

드디어,

참으로 오랜 황혼속을 달려 온 우리의 비행길은

마침내 아침놀을 뚫고 장엄하고 찬란하게 솟는 오랜지빛 태양을 눈부시게 바라보며

내 조국 가까운 하늘 위를 정지된듯 날고 있습니다. 나는 것인지 한자리에 서 있는 것인지.....

 

북유럽 어디쯤에서 시작된 황혼은 몽골 상공에서 아침노을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천지창조의 하느님과 어느남정네의 손가락 닿기보다 더 신비롭고,

이티 영화의 이티와 어느소년의 손가락 닿기 보다 더 감동적인 hand in hand입니다. 하하하

9000km를 9시간 여의 비행끝에 당도한 내 땅!!

 

아침 7시

에어프랑스, 그저그런 식사메뉴에 그저그런 서비스에 그저그런 기내분위기인 에어프랑스의 어느 비행기는

인천 공항,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는 인천공항에 내려 앉았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일본여인과 '우메보시가 좋더라', '고추장을 좋아한다' 라는 다분히 외교적인 대화를 나누던 나는

기내 옆자리 길동무의 환승과, 남은 여행의 편안함과, 가족 상봉의 즐거움을 빌어주며

열기 가득한 서울로 입성했습니다.

 

서울은 열나게 나를 환영했습니다.

6월 6일 현충일의 슬픈 기념사와 포도위를 덥혀주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로.....

뜨거운 대환영 속에 그렇게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블친님~

한국에서의 '은비 님'의 행보는 이렇게 시작되어지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오두막 강아지들도 건강하고

오두막 열매들도 잘 들 영글어가고....

그러나 한국의 시간은 참 느리게 가고 있네요.

벌써 파리가 그리워집니다요. 에궁~

그 서늘하고, 구름 뭉실 떠있는 쏘공원이 몹씨도 그리워집니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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