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큰 사람의 인생

eunbee~ 2009. 5. 29. 15:31

'우리가 80년을 산다고 치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0시에 태어나서 십대가 되면 새벽 3시, 이십대가 되면 아침 6시,

삼십대가 되면 오전9시, 중년의 사십대가 되면 정오, 장년의 오십대가 되면 오후 3시,

회갑이 있는 육십대가 되면 오후 6시, 자꾸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는 칠십대가 되면 밤9시,

그리고 그 이후는 자정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생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대의 생의 창가에 벌써 오후의 햇살이 비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때 방송국 아나운서를 지낸 사람이 어느 월간잡지에 올린 글이다.

병원의 무료한 휴게실에서 무료를 달래느라 뒤적이다가 읽은 글이다.

자~ 그러면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걸까?

自問 해 보나마나, 오후 6시를 넘긴지도 한참이다.

뭐..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아니더냐.

아침 동이 틀 무렵과 저녁 해가 막 지고 난 다음의 그 아름다운 몽환속의 매직타임!!!

나는 지금 그 시간에 머무르고 있는거다.

 

그런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장일에 이런글 쓰는 것은 나름 뜻이 있어서

글을 쓰려고 맘 먹기는 했으나, 가신 분이 안타깝고, 미안하고, 슬프다.

이 좋은 인생의 시각에 떠나시게 된 것도 슬픈 일인데,

억울함과 치욕과 말할 수 없는 절망속에서 가시게 되어 더욱 슬프다.

 

'뻔뻔하지 못한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엄청난 세상인가봐.'

대통령의 서거 소식 후에 작은따님이 쓴 메일의 한 구절이다.

세상은 많이 뻔뻔스러워야 편한데....

세상은 많이 능글거려야 편한데....

세상은 많이 부도덕해야 편한데....

세상은 적당히 타협해야 편한데....

그런데...우린 그렇지 못해 늘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는 산다.

그것이 풍진에 싸인 사람살이인 것을....

아름다운 몽환의 시간에, 인생의 붉은 노을의 매직타임을 누리지 못하고 가신

님의 슬픈, 꺾인 꿈과 꺾인 삶을 애도하며

다시한번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치욕을 이겨내고 역사에 남은 사마천司馬遷처럼, 그 님도 때를 기다려

사람사는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시지...

 

그냥 일개 凡婦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님을 보내는 날 오후

시린가슴을 달래 본다.

 

큰 사람의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고....

작고 작은 나는 인생의 매직타임에서 이렇게

아직도 꿈을 꾸고 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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