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 강마을로 들어 오는 다리 위가, 하루 종일 차들로 뒤덮여 주차장으로 변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낀 연휴라서 많은 사람들이 봄 나들이를 나섰는가 봅니다.
온 나라의 도로가 임시주차장이 된 어제 오후에, 얼마전 17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사는 이 강마을에 와서 함께 그릴을 하며, 의미있는 날을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후 두 시를 지나서 서울에서 이곳을 향해 떠난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40분이면 충분히 당도할 수 있는 거리인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도착하지를 못했습니다.
나는 꽉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는 양수교 위의 차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배들은 고플까 걱정이 되어
어디쯤 오고 있는지 물었더니, 이제 겨우 팔당대교를 건너고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들은 꽉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방송국에 음악 신청을 해서
'지금 옛 스승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께 노래를 띄워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내고는, 그들의 문자 멘트가 나오는 방송을 들으며 왔다고 합니다.
지루한 운전시간을 그렇게 메꾸어 낼 줄 아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신선하고 지혜롭게 생각되었습니다.
해는 서산 위에 내려앉고, 그들은 강기슭 내 집에 도착했습니다.
처음보는 세 젊은이들이 나의 제자와 함께 와 주었습니다.
정원에 나가서 바비큐를 준비했습니다.
숯불도 잘 피우고 고기도 맛있게 잘 굽고, 처음 만난 내게 상추에 싼 고기며 과일을
살갑고 다정스럽게 입에 넣어 주며, 아들처럼 딸처럼 며느리처럼 사랑스럽게 굴었습니다.
그들은 의사, 영화인, 배우들로 각자가 몹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생전 처음 만나는 친구의 옛 선생님을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잔치를 벌였습니다.
바비큐거리와 와인과 꽃다발과 케익을 준비한 그들은
행복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이야기까지 마음속에 꼭꼭 채워와서,
희미한 세월의 뒷전에 놓여있는 옛 스승을 황홀한 스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초승달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별들은 초롱초롱 맑은 눈빛으로 나에게 윙크를 보냅니다.
강물위에 반짝이는 가로등의 물그림자는 축하 트리가 되어 아롱아롱 흔들리며 춤을 춥니다.
나는 예기치 못한 행복에 싸여, 한껏 들뜬 마음이 하늘만큼이나 높다랗게 풍선을 타고 오릅니다.
강바람이 점점 차가워져서 바비큐를 끝내고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집안의 불을 모두 끄더니 케익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정성을 모아 부릅니다.
20 여년 전의 제자가 그의 소중스런 친구들과 함께 옛스승을 찾아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내가 수십년을 교단에 서 있을 때 듣던 '스승의 은혜'와는 사뭇 다른 노래입니다.
내 마음 한가운데로 출렁 감격스런 뭔가가 흔들리고, 목구멍이 메케하게 까끌거립니다.
행복과 감사의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습니다.
화르르 쏟아지는 박수소리와 함께 전등 불은 다시 밝혀지고
안개꽃에 싸인 붉은 장미꽃다발을 내게 주며 제자의 친구가
'선생님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느새 모두의 선생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밤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 그들이 돌아 갈 때,
그들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볼을 맞춥니다.
마치 오랫동안 볼 수 없는 엄마에게 하듯이...
그들이 몰고 가는 차들의 뒷 불빛이 사라진 후, 한참 동안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달은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이고,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반짝이며 손 흔들고 있습니다.
이미 새벽으로 넘어 선 밤 강물은 내 행복한 마음을 싣고 가만가만히 흐릅니다.
이제 내게는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가 교단에 서 있던 그때 듣고 부르던 그 노래만은 아닙니다.
나만의 아름답고 감사하고 행복한 스승의날 노래를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살이는 이렇게 행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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