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07

별밭으로 스며들다.

eunbee~ 2008. 1. 1. 17:44
여행지
쿠스코
여행기간
페루 6일 중 이틀동안
비용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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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안데스.

그 이름만으로도 까닭모를 동경에 젖게 하며 마음 설레이게 하는 곳.

콘도르의 고향, 샴뽀냐의 맑고 애달픈 소리로 우리의 영혼을 그곳으로 부르고 있는 향수어린 곳. 내가 늘 가고 싶어 하던, 어쩌면 전생의 내 외갓집이 있었을 것같은 그리운 땅.

2007년 12월 어느날, 나는  그곳으로 갔다.

 

유럽의 도시 어느 광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인디오들이 들려 주던,

안데스의 바람 소리를 닮은 샴뽀냐 /Sampona 에 젖어, 

푸른 하늘 속을 정지하듯  비행하고 있는 커다란 검은 새들을 고개 아프도록  올려다 보며,

안데스의 우람한 근육에 안겨 취한 듯, 혼이 나간 듯, 그렇게 안데스산맥을 넘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것은, 침략자의 초석으로 남은 돌덩이,

저항하다 스러져간 영혼들이 머무는 요새들,

깊은 산 구비구비 돌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늙은 봉우리를 터전 삼은 삶의 흔적들.

그리고 곤궁한 표정으로 나그네를 바라보며, 순박한 물건을 내미는 가난한 손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진다는 슬픈 현실.

나는 허망하고 슬펐다.

안데스 산을 넘어 불어오는 허망한 바람들이 내 울울한 가슴을 속속들이 휘 저었다.

 

너무나 높은 경지까지 발달시키고 누렸던 문명이며,

수수께끼같이 풀리지 않는 그들의 첨단 기술과,

지천으로 흔하던 금으로 은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도시와 건축물을 세우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며 살던 그들이, 

한낱 스러져 가는 유적으로만 남아 있음이 참으로 슬프다.

스페인의 약탈자 살육자들을, 전설속의 메시아 비라코차라고 섬긴 그 순수한  그 땅의 주인들이

어쩌면 내 육친이 도륙당한 듯, 울분이 솟구치고  한이 맺혀오는 슬픔을 안긴다.

문명을 가진자 보다, 칼을 가진자가 더 강자일까?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도륙당했던 허물어진 유적을, 쓰러담고 주워모아, 세상의 나그네에게 보여주는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산 구비구비 뛰어 내려 와, 굿바이를 외치는

슬픈 소년들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가만히 보낸다. 슬기롭게 살아 지기를...

 

해는 안데스너머로 사라지고, 멀리 마추픽추까지 갔던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다시 쿠스코로 차를 몰았다.

잘 단련시킨 우람한 보디빌더의 굵은 근육처럼, 힘 차게 뻗어 내린 안데스산맥의 줄기마다에

엷은 황혼이 잦아 들더니, 산구비를 돌 때마다 어스름은 어두움 속으로 잠겨 갔다.

안데스 산자락 아래에는 밤이 일찍 찾아 든다.

 

밤 여덟시의 쿠스코.

산 구비를 돌아, 언덕을 내려오며 본 쿠스코의 밤풍경은  별밭이었다.

안데스의 한 자락에 이렇게 아름다운 별밭이 숨어 있다니...

노랑 가로등이 온 시가를 밝히고, 푸른 불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가게들은 보석을 매단듯하다.

단조로운 오렌지빛의 가로등과 엷은 푸른 보석으로 빛나는 집집마다의 불빛들이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고 있다. 온 시가지가 두가지 색만의 불빛으로 조화되어 반짝인다.

낮에 보았던 그 특이한 아름다움을 가진 거리들도 나그네를 꿈속으로 빠뜨리더니

꽃불을 켠 밤의 쿠스코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몽환속으로 침잠시킨다.

잃어버렸던 고향을 다시 찾은 듯, 반가운 서러움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너무나 아름다운건 항상 슬픈 느낌을 동반하는구나.

 

한참이나 돌아야 하는 산구비를 내려와 시내로 들어선다.

내려 온다고는 해도, 해발 3,380m의 고산 지대의 마을이다.

우리도 이밤, 한개의 별이 되어, 별밭으로 섞인다. 아름다운 지구별 한켠에 숨어있는

가장 아름다운 별꽃 밭에서  나는 착한 별이 되어 잠을 청했다.

한 개의 별로 스며 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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