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aux에서

3월 28일

eunbee~ 2019. 3. 28. 22:19

 

 

 

오늘은 아침부터 쾌청하다.

눈부신 햇살을 마음껏 누리며, 나무는 햇닢을 틔우고

꽃들은 생의 찬가를 합창하니 작은 새들마져 짝을

부르기에 바쁘다. 정녕 봄은 환희로운 계절이다.

 

지금 시각 오후 1시 50분,

까비는 부엌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봄빛에 잠겨 있더니

이제 잔다. 내가 부엌에 있을 때마다 재워주기를 기다리는

의자에서 포근히 잠들었다.

봄햇살과 참 잘 어울리는 까비의 오수.

 

오늘은 참선하고 있는 내게 와서

살며시 앞발로 내 무릎을 긁는다.

쓰담쓰담해 달라는 신호다. 일주일만에 까비가 예전 감정을

되찾고 있는 듯하니 너무나 기쁘다.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는

애무를 바란다. 무척 외로운가 보다. 나이들고 병들면 누구나 다

외로운 것. 그래서 안 그런 척 더 호들갑을 떠는지도 모른다.

 

거의 매일 꼭두새벽, 세네 시 즈음

까비의 마루를 걷는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깨어

밥을 먹이며, 옛날옛날 한옛날 첫딸을 낳은 어린 엄마가

아기의 입맛다시는 소리에 잠을 깨어, 분유를 따끈한 물에

타서 아기 입에 물리면, 입맛다시던 아기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넙죽 젖꼭지 물고 힘차게 빨던 그때를 생각한다.

온종일 학생들과 씨름하던 고달픔은 아예 없었던 일처럼, 입맛다시는

소리에 밤마다 저절로 잠을 깨다니...

그시절의 그 엄마 마음을 상기시켜 주는 까비에게 감사한다.

 

모든 건 지나간다,더니

어느새 이세월에 당도해, 나보다 더 나이든 고양이를 보살피며

이 또한 감사한 일이야, 하면서 내 하루 중 까비의 사랑의 무게를

헤아리고... 만끽한다.

 

맑고 푸르른 하늘에선 어디론가 떠나는

여객기의 엔진소리가

나른한 봄볕을 흔든다.

또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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