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를 보며

eunbee~ 2013. 7. 19. 01:22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기념일

 

1789년 7월 14일 

*제3신분으로 결성된 국민의회의 개혁의지와,

계몽사상가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눈 뜬 시민들의 개혁에의 열망,

(온건하고 침착한 신부 시예즈는[제 3신분이란 무엇인가? 全能이다. 

이때까지 제3신분은 무엇이었던가? 全無였다. 앞으로 제3신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그 무엇인가가 되고야 말 것이다]라는 팜플릿을 내놓았고 그것은 일시에 3만부나 팔려나갔다고 한다.)

민심 속에 흉흉하게 작용되는 그릇된 소문들(3일치의 빵밖에 없다.군대가 애국자를 학살하고 있다. 

무장강도가 빠리로 쳐들어 오고 있다 등등)에 동요된 시민들이 바스티유에 있다는 화약과 무기들을 탈취하러 

바스티유 요새로 침입한 것이 혁명이란 대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제 3신분 - 그당시 프랑스는 제1신분(성직자  약 12만명,) 제2신분(귀족 약 40만명. 귀족과 성직자가 전체 인구의 2%)

  나머지 98%인 2,450만명은 평민 부르주아인 제 3신분.  성직자와 귀족은 전국토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7월 14일 혁명기념일 행사에서 행군하는 도끼를 든 부대원들.

 

그러나 [프랑스사]를 쓴 '앙드레 모로아'는 그 책의 제 4부 혁명의 발단 서두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폭동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목가적인 분위기로부터 발단되었다.'

 

1789년 1월 1일 국왕(루이 16세)은 **삼부회의를 소집하고 제3신분의 정원을 배가하도록 윤허했다.

그 삼부회의를 하기위해 제1신분(성직자) 제2신분(귀족) 제3신분 (부르주아를 포함한 평민, 그러나 삼부회의 시,

의식있는 성직자와 귀족 47명은 제3신분으로 참여했다고 한다.)이 모여 회의를 했으나 역시 계급간의 간극은 여전했고

귀족과 성직자들은 제3신분을 회의장소에서 조차도 홀대하였다. 그들이 회의하는 장소를 폐쇄해버린 것이다.

국민의회라는 이름의 이들은 쥬드뽐Jeu de Paume(경기장?)에 모여 회장을 선출하고 언변좋은 미라보 백작은 

국왕을 제3신분의 적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사를 어찌 이곳에서 이야기할 수 있으랴. 더구나 내가 말이다. 

 그러니 관심있는 분은 프랑스사의 혁명 챕터를 읽으심이..ㅎ)

**삼부회 - 검색해서 읽어보시와요. 프랑스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ㅋ

 


 

아무튼 복잡한 역사 기술은 생략하고,

 

 앙드레 모로아는 [프랑스사]에서 말하기를

-프랑스 혁명의 성과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은 18세기부터 서서히나마 인간생활에 점차로 침투하여 오던

 사회적 평등이란 관념이 법률로서 성문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되는 제도를 깨끗이 파괴했다. 시대에 낙오된 제도 개혁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성과는 프랑스의 통일을 완성한 것.

  (이대목에서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제정시대가 설명되어야 하지만 아무튼...)

-유럽사회세속화 한것도 프랑스혁명의 공적이라고 기록해야 한다.

  라고 기술한 것을 내가 추려보았슴이야~ㅎ

 

혁명기념일 행사는 거창했고,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그 어느나라들에서의 하계올림픽식전행사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하며, 나는 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감탄했다.

해마다 혁명기념일 행사는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워, 이방인인 내게도 애국심이 생겨날 지경이다.ㅎㅎ

이들의 기념식은 식이 아니라 축제다.

아침 8시부터 국영방송 채널 2에서는 기념행사를 중계하기 시작.

그간의 준비과정이며, 이날의 특별한 출연을 위해 준비해 온 사항을 소개하고 인터뷰 했다.

10시.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이 탄 차가 거리로 나와 가까운 개선문 에뜨왈 광장에

빙둘러 도열하고 있는 군인들을 사열하며 한바퀴 돌아, 샹젤리제 거리를 기마병들에 둘러싸여

식장이 마련된 콩코흐드 광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찍은 영상 속의 파리는 넘넘 아름다웠다.

에뜨왈 광장을 하늘에서 보는 건 마치 예술가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우람한 나무들이 들어찬 주택과 거리는 숲 속의 궁궐들을 지나는 풍경이었다

 

 

유엔사무총장과 말리 대통령 등 국외 고위 인사들도 참석한 기념행사는

서너시간이나 진행되었다. 각군들의 퍼레이드는 그냥 행진이 아니라 행진 도중에 

아름다운 대형으로 서서 코러스를 부른다. 군가로 들리지않는 아름다운 화음의 음악을..

삼색기의 삼색을 흩날리며 비행하는 에어쇼도 장관.

각군 각부대의 행진 중에는 말리의 군인들 행진도 있었고.

어느 시대의 병사인지, 도끼부대(내가 붙인 이름ㅋ)는 가죽으로 된 에프런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어깨에는 도끼를 울러매고 천천히 걷는다.ㅎㅎ

청소년도 유서깊은 휘장을 들고 참석하고

노병들은 그옛날의 훈장을 가슴에 번쩍이며....

아무튼 화려한 축제다.

 

 

밤 9시, TV 국영방송 채널에서는 '역사의 비밀'이라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가 주 배경이된 혁명에 관한 역사 다큐를 방영, 

10시부터는 피아니스트 링링을 포함한 유명 소프라노 등등의 

음악가들과 팝뮤지션들이 벌이는 콘서트가

상 마르스 광장 에펠탑 아래 마련된 휘황한 무대에서 개최.

전력을 아끼느라 거리는 컴컴하고 샤인스타도 5분으로 줄인 파리당국은

이 시간에는 에펠탑 샤인스타를 한시간이상 반짝이며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밤 정각 11시, 에펠탑의 샤인스타도 조명도 모두 소등되고 폭죽이 올랐다.

무려 50여 분을....

맨 마지막, 샹송'장미빛 인생'을 남성 음성으로 연주하고,

아름다운 코러스를 끝으로, 7월 14일 자정에

축제는 막을 내렸다.

 

 

(이곳에 올려진 사진은 은비가 핸펀으로 티비 영상을 담은 것)

 

 

 

 

Francois Gerard Georges Hollande와 

동거녀지만 영부인 예우받는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올랑드 대통령은 정식결혼을 하지않았다. 동거녀가 어엿하게 영부인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에도 영부인 자격으로 동행한다.

올랑드 대통령 전 동거녀는 대통령에 출마했다가 낙선. 차기에 출마한 올랑드는 당선

전 동거녀는 현재 정부 각료. 조금만 더 곁에 있었더라면 영부인 되는건데. ㅎ

이 나라는 그런것을 문제 삼지않는다. 너무도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전 대통령 사르코지 부인 부루니는 누드 사진도, 만삭 비키니 사진도, 나돌았으나 그냥 봐준다.ㅎㅎ

 

프랑스 어느 TV프로에서 얼마전 올해의 바깔로레아 문제를 내놓고

장관들이 자기 견해를 펴는 방송이 있었단다.

 

바깔로레아Baccalaurat(대입자격시험)는 해마다 6월에 있다.

이곳에서는 그냥 BAC박이라고 말한다.

올해 바깔로레아 철학 문제 중 몇 문제를 올려본다.

 

(3-4문제 출제 중 선택 자기 견해 기술)

문과계열 철학문제 - 언어는 도구일 뿐인가.

상경계열 - 국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과계열 - 정치에 관한 관심없이 윤리적인 행동이 가능한가

-노동은 자의식을 갖게끔 하는가(노동은 자의식 형성에 작용되는가로 번역되면 매끄러울듯)

선택한 논제를 4시간에 걸쳐 두 편의 엣세이 형식으로 개진한답니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명제에 자기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학생으로

교육하는 프랑스이기에 저러한 대혁명을 이룬 것이 아닐런지.

 

나는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를 볼 때마다

자유로움 속의 질서, 화려함 속의 검소함, 다양함 속에 깃든 창의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통계승, 애국심, 감사와 기억, 예술성 짙은 정서를 느끼기에

감동하고, 프랑스를 이루는 그들의 정신을 존경하게 된다.

.

.

 

내사랑 파리~

하늘에서 보여주는 그날의 파리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지금도 눈에 삼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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