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누레예프
[Rudolf (Hametovich) Nureyev]1938. 3. 17 소련 이르쿠츠크~ 1993. 1. 6 프랑스 파리.
발레리노.
어제(1월 7일)
낯시간 대부분을 '장일범과 함께하는 오페라 갈라쇼'와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연주' 그리고 발레를 보면서 지냈다.
그중 누레예프와 마고트 폰테인이 공연한 전설적인 발레작품 [백조의 호수]는 감동, 감동, 감동이었다.
내가 그동안 보아온 [백조의 호수]중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막내올케와 내가 러시아로 여행을 갔을 때, 마린스키극장에서 5막으로 된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4막으로 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특이하게도 5막으로 연출, 안무를 하다니...
올레티비 UNITEL CLASSICA 채널에서 행운으로 만난 [백조의 호수]가 너무도 감동스러워
포스팅을 할 요량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우연케도 그제(6일)가 누레예프 20주기였다고 한다.
오는 6일은 20세기의 경탄할 만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인 루돌프 누레예프의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1938년 3월, 바이칼 호수 부근을 지나던 열차에서 태어난 누레예프는 1993년 초 비교적 이른 나이에 파리에서 타계했다.
그는 양성적인 매력의 외모, 놀라운 스피드와 정교한 테크닉, 표범을 연상시키는 우아함, 불꽃 튀는 존재감으로 발레리노의 위상을 발레리나 이상으로 격상시킨 존재다. 한편으로 더욱 위대한 것은 안무가로서도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파리 오페라 발레의 예술감독직을 겨우 6년간 수행하는 동안에 산출된 누레예프 프로덕션의 발레들은 지금까지도 이 단체의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 인간의 육체가 빚어내는 경이로움을 확인하고 싶다면 누레예프의 춤과 그의 안무작들을 눈여겨 볼 것을 권한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
오데뜨(폰테인)의 독무, 그리고 지그프리드(누레예프)의 독무는 물론
누레예프와 폰테인의 그랑 파드되도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연기였음은 물론, 누레예프의 32회전 푸에떼는 압권.
내 가슴이 마구 뛰었다.
루돌프 누례예프,
[그의 도약이나 빠른 회전은 종종 니진스키의 전설적인 재능에 비견된다. 타타르족 출신으로 11세에 발레 공부를 시작하여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발레로 생계를 이어갔다. 17세에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 학교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냈지만, 콤소몰(공산당청년조직) 가입을 거부하고 외출금지 규정을 어기며 몰래 영어를 배우는 등 반항적이었다.
1958년 학교를 졸업한 뒤, 순회무용단인 레닌그라드 키로프 발레단의 독무연기자가 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61년 6월 키로프 발레단과 함께 파리에 갔을 때 공항에서 소련 보안요원의 감시를 피해 프랑스에 망명을 요청했다. 나중에 그는 소련 발레단에서는 조직운영이 엄격하여 춤출 수 있는 기회도 자주 얻지 못하고 다양한 연기를 맡는 데도 제한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망명 뒤 '그랑 발레 뒤 마르키 드 퀴에바'와 협연했고, 1962년에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루스 페이지의 시카고 오페라 발레단과 함께 공연하여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그해 후반에는 런던 로열 발레단의 상임 객원연기자로 입단했다.
그는 마고 폰테인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상대로 유명했는데, 그가 한 상대역으로는 〈지젤 Giselle〉의 알브레히트 역,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Marguerite and Armand〉의 아르망 역, 〈백조의 호수 Swan Lake〉의 지그프리트 왕자 역 등이 있다. 그는 전세계의 크고 작은 여러 발레단에서 인기있는 객원연기자였다. 안무가로도 활동한 그는 〈백조의 호수〉(빈, 1964)를 남자 무용수 중심으로 개작했다. 그가 각색한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977)을 런던페스티벌 발레단이 공연했고, 〈만프레드 Manfred〉(1979)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공연했다. 1980년에는 베를린 발레단을 위해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을 무대에 올렸고, 1981년에는 이탈리아 무용계의 부활에 힘입어 자신이 각색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라스칼라 극장에서 마곳 폰테인(줄리엣 역)과 함께 공연했다. 그는 현대적인 작품에서도 기량을 발휘하여 마사 그레이엄, 머레이 루이스, 폴 테일러 등의 작품도 공연했다. 마사 그레이엄은 그를 위해 〈루시퍼 Lucifer〉(1975)를 창작했으며, 1978년에는 머레이 루이스가 그를 위해 안무한 〈Canarsie Venus〉및〈비바체 Vivace>의 미국 초연에 출연했다.] (검색자료)
그의 자서전 〈누레예프 Nureyev〉가 1962년에 출판되었다. 1973년에는 로버트 헬프만과 함께 감독한 발레 영화 〈돈키호테 Don Qujxote〉에서 주연을 맡았고, 1977년에는 영화 〈발렌티노 Valentino〉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2번째 영화 〈Exposed〉(1983)에서는 주연을 맡아 연기하면서 춤은 전혀 추지 않았다. 1983년에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맡아 첫 공연을 가졌다. 1982년 오스트리아 시민이 되었다. (검색자료)
TV 화면을 통해서 보는 세기적, 세계적인 발레 공연을 보면서 나는, 내가 경험한 생뜨페테르부르그의 마린스키 극장, 밀라노의 라 스칼라좌,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그리고 베르사유의 오페라극장을 떠올리며 그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 속에서 수준높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음에
다시 또한번 감사한 마음이 우러남을 금치 못했다. '고마워요. 내 인생이여!!'
누레예프는 1961년 6월 키로프 발레단과 함께 파리에 갔을 때, 공항에서 소련 보안요원의 감시를 피해 프랑스에 망명을 요청했다.
마고트 폰테인은 40세 무렵에 은퇴를 생각했으나 유럽으로 망명한 누레예프와의 만남으로, 1964년도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26세의 누레예프와 47세가 된 그녀는 공연후 관중들로 부터 89차례의 커튼콜을 받았다고 한다.기네스 등재라네~ㅎㅎ
그후 1966년에 빈에서 다시 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 공연실황 영상이 7일날 내가 올레티비 UNITEL CLASSICA 채널에서 만난 영상,
그 환상의 무대였다.(위 사진 모두는 티비 화면에서 옮김)
마고트 폰테인과 바리시니코프
마고트 폰테인 (Margot Fonteyn) 1919.5.18~1991.2.21. 영국 출생
현시대에 가장 위대한 클레식 발레리나. 로열발레 댄서로 전임.
엘리자베스 2세로 부터 최고 수석 발레리나로 지명받음.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바리시니코프(Mikhail Nikolaevich Baryshnikov, 1948년 1월 27일 ~ )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미국의 발레 무용수 및 배우이다. 미국으로 망명.
영화 '백야'에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남겼으며,
그는 니진스키-누레예프-바리시니코프로 이어지는
전설적인 발레리노의 계보를 잇고 있다.
아래 동영상은 블친 갈매기님께 유투브에서 옮겨오는 방법을 교수받고..ㅋㅋ
가져온 것인데, 내 실력으로는 위의 동영상을 찾을 수 없어서 우선 이것으로...ㅠ
실력 쌓으면 더 좋은 영상을 올려 보도록 하겠음이야~ㅎ
본 동영상에는, 누레예프와 폰테인의 그랑파드되(Grand pas de deux 2인무) 장면도 있고(4 : 43)
돌아댕기다 보면, 율리아 마찰리나(오데뜨)와 이고르 젤렌스키(지그프리트)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키로프 발레]가 있다우.이건 전막짜리라서 1시간 반도 넘어요.*^_^*
나의 블방 개인교수님 '갈매기 님'께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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