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큰딸과 함께 공원을 거닐면서
한 달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아 팍팍하고 푸석대는 공원의 잔디와 나무와 풀잎의
모습을 보며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비를 내리는 나무]는 큰딸 유학 초기 파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던 어느날
[자연]이라는 가게에 들어가, [비를 내리는 나무] 라는 이름의 자연악기?를 하나 장만해서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다.
우리가 비를 내리는 나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류시화 님의 글을 읽고부터 였다.
약간은 픽션적인 요소가 강한 류시화의 여행기나 에세이를 심심풀이로 자주 읽었다.
그가 쓴 [비를 내리는 나무]와 자기 그리고 그의 아들에 얽혔던 이야기를 읽고 재미있어서
큰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는 가게에서 만난 기다란 막대기를 주저없이!!^^ 구입해서
국제소포로 보냈다. 그것을 배달해준 우체부는 그것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1m 가까운 길이의 둥그런 막대기가 지름은 6-7cm쯤 되며, 기우릴 때마다 차르르~차르르~쏴아아~쏴아~ 소리가 나니...ㅎㅎ
내가 가지고 있는 [비를 내리는 나무]는 칠레의 사막에서 자라는 속이 비어있는 선인장? 줄기에 마른 씨앗을 넣어
양쪽 잘린 입구를 막아 만든 것으로, 이리저리 기우리면 마치 비오는 소리처럼 차르르르~쏴아아아~하면서
경쾌한 빗소리를 낸다.
나는 비가 오지않으면 그 나무를 들고 이리저리 기우리며 빗소리를 냈다.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들면 비가 내린다고, 인디언이나 남미의 원주민들은 믿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으니, 비가 오지않으면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드는 일은 내겐 매우 자연스러운 기도 방법이다.
비를 무척 좋아하는 내가 매마른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며칠만으로 족하다.ㅋ~
그런데 내[비를 내리는 나무]는 한국에 있으니, 이렇게 가물어도 흔들 수가 없다고 했더니
큰딸은 자기 것도 한 개 장만해 두었다고 한다. 못 말리는 모녀~^^
그래서 우린 약속을 했다. [비를 내리는 나무]를 비가 올 때까지 매일 흔들기로...
퇴근해서 돌아 온 큰딸이 오늘도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들고 있기를 바란다.
한 달 아니 두 달 가까이 비 내려줄 생각을 않는 파리와 안토니의 하늘에 고하는,
비를 좋아하는 엄마와 딸의 '비굿'이다,
큰딸이 흔들다가 효험이 안보이면, 이 엄마가 흔들어야 겠다.
내 '비굿'은 비교적 효험이 컸었으니까....^*^
비야 비야 내려라~
제발 제발 주룩주룩 쏟아져라.
어제는 티비 화면에 비치는 한국의 어느 거리에 소낙비가 쏟아지고 빗물이 넘쳐흐르는 장면을 보고
작은딸은 '나는 저렇게 비내리는 것이 부러워, 이곳엔 저런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는 일이 없거든.'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별것이 다 부럽단다.
홍수가 지는 것까지도 그리워해야 하는 타국생활이라니...ㅠㅠ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를 몇 달째 손에 쥐었다 놓았다하는지...
읽다가 머리가 아파오면, 이책 저책 가벼운 책들을 뒤적인다.
며칠 전부터, 옛날옛날 한옛날에 내가 읽고 큰딸에게 선물했던(앞 페이지에 쓰인 구입 날짜와 메모가 상기시켜주었다.)
류시화 님의 책을 집어들고 수면제로 활용하고 있다. 잠들기 전에 한 두페이지 읽는, 읽은 곳 또 읽는 책의 한귀퉁이를 옮겨 본다.^&^
*** 빈배 ***
작은 배를 타고 그를 만나러 가곤 했다./
....중략/
배를 노 저어 그의 배로 가면 일렁이는 물결 위에 긴 머리털을 한 그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시선이 내 영혼 구석구석 파고들어서 어떤 때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고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그렇게 연인처럼 몇 시간이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의 눈을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마치 큰 산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두 영혼의 만남엔 말이 필요없음을 그는 가르쳐주었다.
침묵은 신과 대화하는 유일한 언어임을 그는 가르쳐주었다./
....하략.
사진은 영화 '아쉬람' 의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