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 소설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오늘 읽었다.
남미 여행 때, 칠레의 바닷가 마을에서 네루다의 詩魂을 찾아
그가 초록 잉크로 써 내려가던, 민중을 위한 노래들을 웅얼대 보던 기억에,
책을 읽는 동안, 다시금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이 네루다의 詩처럼 내 맘을 흔들었다.
'일 포스티노'
나에게는 칠레 산티아고에 또 하나의 우체부가 있다.
세계 곳곳에 심어둔? 나만의 우체부.
여행지에서 만나 도움을 받고 안내를 받고
서울로..파리로... 보내는 엽서를 부탁하는 임시 우체부.
여행을 하다보면, 그 곳의 풍광이 담긴 그림엽서를 사서
어느 길모퉁이에 앉아 그 때의 감상을 적어 보내는 것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된다.
여느 여행에서와 마찬가지로 산티아고에서도 나는 엽서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그 곳을 가장 잘 나타내는 내용이 담긴 그림엽서를 골랐다.
산티아고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파라이소 군항 도시 근처에는
산동네의 궁벽한 집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꼭대기로 꼭대기로 올라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그 곳을 오르내리려면 아센소르Acensor라는
케이블카를 닮은 전동차를 타고 올라야 할만큼 가팔진 산동네가 매우 인상적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이 동네의 인상을 '가난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라고 적었단다.
나는 이 동네가 특징적으로 잘 담긴 사진을 석 장 골라서
한 장은 여행의 길동무로 가장 좋은 막내올케에게 보낼 사연을 적었고
두 장은 파리에 있는 큰따님과 작은 따님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적어
우체국을 찾아 헤맸다.
산티아고의 중심 거리를 다니며 우체국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그 곳을 안내해준 현지 한국교민 안내자에게 그림엽서 석 장과 우편요금을 맡겼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해 오던 부탁이었다.
그러나 나의 산티아고 임시 우체부는 임무를 다 하지 못했다.
20 여일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한 달이 지나도록
내가 보낸 그림엽서는 돌아올줄 모르고....
아마도 그 청년이 내 엽서를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조금 섭섭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 오지않는 것은 자꾸만 기다리게 되니까....
그래서 내 임시우체부도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고
칠레와 산티아고와, 이름을 잊은 산동네의 아센소르 그림엽서를 기억하고 있게 되었으니까.
네루다가 자주 찾아 시상을 떠 올리던 바닷가 비냐 델 마르 2007년 12월 말 사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El Cartero De Neruda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Antonio Skarmeta라는
작가이자, 영화 '일 포스티노'를 감독하고 출연하기도 한 그가 14년에 걸쳐 쓴 것으로
이 소설은 네루다와 그의 개인 우체부 마리오와의 인간적 연대를 그린 작품으로
메타포의 놀이터답게 언어는 감칠맛나고, 살아 숨쉬는 언어의 감미로움과 유머러스함이
입에 착착 달라 붙는 번역의 매끄러움을 더해, 단 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남미 여행을 떠 올리기도 하고
길 잃은 그림엽서를 생각하기도 하며
네루다가 자주 거닐던 바닷가 비냐 델 마르를 그리워 하기도 했다.
네루다가 표현한 것처럼
'가난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마음속에서는 '그 곳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열망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돌아오지않는 편지!
내게 선택받았던 그 그림엽서들과 깨알같이 새겨놓은 사연들은
지금 쯤
산티아고 어느 골목길에서
태평양의 바람결에 나부끼고 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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