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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류나무가 여기에 있네

eunbee~ 2017. 6. 9. 21:17

 

 

나 어릴 때 살던 고향집 뒤란에는 미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단발머리 꼬꼬마 눈에는 하늘까지 닿을 듯 아물아물... 키큰 나무.

 

초록 무성한 유월이면 키큰나무엔 언제나 바람이 일고, 윤기나는

도톰한 잎사귀에는 햇살이 묻어나 반짝반짝 빛을내며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수화로 내게 말 건네는 듯하여 잎새의 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앉아, 하늘과 구름과 미류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 햇살에 반짝이는 잎새, 제각각의 몸짓으로

마음 속에 내려와 앉는 바람 이야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취해

단발머리 소녀는 끝없는 동화를 만들어 낸다.

 

나 어릴 적 여름날 땡볕 아래서 나랑 놀던 미류나무는 내엄마가 심은

것이라 하셨다. 아홉 살터울 내 언니 태어나기 전 해에 아버지는

아담한 기와집 한 채를 지으셨고, 이듬해 엄마는 뒤꼍에 미류나무를

심으셨단다.

 

언니와 함께 쓰는 방 뒷창문을 열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서 있는 미류나무는 언제나 스스스~라고 말 건네온다. 단발머리 소녀는

미류나무가 참 심심할거라며 까치발로 창문에 매달려 팔을 쭈욱 벋어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한다. 잎철이 지나 가을이 오면 잎새는 연노랑으로

한 닢 두 닢.. 떨어져 장작더미 위에 꽃처럼 내려앉는다. 노오란잎을 꽃이라며

소중하게 주워다가 책갈피에 넣던 그 때.

 

그 얼마나 그리운지...

 

 

여기, 지금...

은비네집 거실에서 눈만 들면 보이는 키 큰 미류나무들,

내 고향 옛집을 그립게 하고, 보고픈 내엄마를 떠올려 준다.

 

먼 세월, 먼 땅에서

내엄마의 미류나무를 다시 만나

수많은 잎새마다에 길고 먼 그리운 이야기를

그려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