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나를 보듯, 비둘기가 가끔 나를 보러 오듯
나는 가끔 지난 여름을 그리워한다.
비둘기가 나를 궁금해하는 만큼씩.
은비가 내려주던 네스프레소의 커피향
자기몸을 우리에게 부벼대던 하얀고양이 야미
이명처럼 밤낮 울어대던 매미소리
은비랑 함께 누워 바라보던 구름비낀 달, 그리고..
은비의 웃음, 말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할~머~니~~~!!!
그리고 또...
날아오르기를 그토록 오래 기다린 배추벌레.
며칠전, 이젠 포기해야 겠다 싶어서 배추애벌레가 돌돌말고 들어간
배춧잎을 살짜기 벗겨봤다.
배추벌레는 죽은 자기 모습을 남기지 않으려고 엷은 섬유질의 막을 만들어
그속에서 말라버렸나 보다. 바스러진 것인지 녹아버린 것인지, 애벌레는 그속에 없다.
천화遷化를 했나 보다.
작은 미물도 이러할진대,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
나비가 되지않은 애벌레의 천화를 보고 나의 웰다잉을 생각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우주가 관장하는 섭리라지.
장자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랠 불렀다지.
죽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같다면서...
740조 개의 세포가 우주의 신비스런 조화로 결합하고 해체하는 것이
生과 死라니, 인간의 죽음도 우주 만물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순환이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기를 기다리던 배추애벌레의 초록몸뚱이가 먼지같은 흔적으로
남겨진 현상을 보고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 애벌레의 천화를 거룩해하며...
애벌레도 자기의 주검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일까?
사고의 비약이라해도 좋다. '철학/사고한다'라는 것은 다 그런 비슷한 것이 아니더냐.
정신의학자이며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그의 저서 [인생수업]에서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삶'이라했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당장 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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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신나게 웃고(Laugh),
즐겁게 배우고(Learn),
포근히 사랑하며(Love),
행복하게 살자(Live)
그리고,
잘 가자. 자알~~!!!
지난 여름의 우리집 초록 애벌레처럼 품위있게.
everybody~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