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몽마르트르 - 시인과 화가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eunbee~ 2013. 6. 21. 21:21

몽마르뜨르 언덕의 빨간풍차를 찾아 든 나는

그 언덕에서 마음의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맸습니다.

오후 반나절 여섯 시간 여를 헤매고 나니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더랍니다.

그 반나절의 이야기를 또 이렇게 풀어놓으렵니다.

이야기가 사뭇 길어지는 군요.

나의 반나절은 한 세기를 건너온 아주 먼~이야기이기도 할테니까요.

 

 

언덕받이에 여적도 그렇게 서 있는 풍차, 물랭 드 라 갈레트 앞에 서 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겉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는 마음이 조금은 쓸쓸했습니다.

그 옛시절의 이야기를 대강은 알고 보고 서 있으려니, 지금이 서러웠던 게지요.ㅠㅠ 

 

언덕을 다시 올랐어요.

언덕을 오르던 중 아파트 앞 작은 광장과 뒷 언덕의 작은 공원 사이를 돌로 쌓아 만든 벽에서 

벽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아하, 바로 저것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쓴 마르셀 에메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두었다는 작품이구나.

우연히 만나다니... 웬 행운.

마르셀 에메는 단편소설로 프랑스에서는 꽤나 인정받는 작가로, 작품으로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생존시간 카드''속담''칠십리 장화''천국에 간 집달리' 등의 단편들이 있다고 해요. 

매우 독특한 에메의 단편들은 그를 '짧은 이야기의 거장'이라고 부르게 한답니다.

 

 

 

 

파리시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몽마르트르 언덕은

왁자하고 번잡함의 구역과, 이렇게 조용하고 한가로운 구역이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데 

두 분위기의 공간들은 바로 이웃하며 공존하고 있답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상반되는 기분은 묘하고 이상스럽기까지 하지요.

 

 

언덕을 계속 올라, 테르트르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저만치 모퉁이집 '르 콩쥘라'가 나를 반깁니다.

이집 벽면에는 피사로, 시슬레, 디아즈, 반 고흐, 로트렉 등 대가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위트릴로의 [콩쥘라]의 배경이 된 집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오베르쥬 드 라 본느 프랑케트'와 '르 콩쥘라'의 간판이 한 눈에 담기네요.

오베르쥬 드 라 본느 프랑케트, 그 유서깊은 장소라니!!

테르트르 광장 바로 옆 풀보거리rue poulbot 9번지에 있는, 이름도 긴 저 카페.

 

 

이 카페는 1890년 이후에야 유명해진 곳으로

세잔, 디아즈, 피사로, 시슬레, 드가, 로트렉, 르누아르, 마네, 반 고흐, 그리고 에밀 졸라 등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더구나 반 고흐가 1886년 10월에 그린 작품 [몽마르뜨르의 선술집]의

배경이 된 장소랍니다.

카페 내부에는 반 고흐의 카피본이 많이 걸려 있답니다.

반 고흐는 말했다지요. "나는 파리 카페에서 항상 내 그림이 전시되길 바랬다"

그시절 그의 소망이기도 했겠지요. 오늘에서야 그의 소망들이 이루어지고 있네요.

카피로..원본으로.. 거리의 카페에서, 유명세 드높은 미술관들에서...

그러나 그는 갔습니다. 함께 걱정하고 고뇌하고 보살피던 테오도 갔습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나 될까요.

아, 가여운 빈센트.

 

반 고흐  [몽마르트르의 선술집] 1886,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와 그의 동생 테오가 2년동안 살던 집도 이 부근 르픽거리Rue Lepic 54번지 아파트 4층 왼쪽 세번째 집이었답니다.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을까요. 물랭 드 라 갈레트가 같은 거리 87번지이니 이들이 드나들고 거닐고 작업하던 

활동반경을 짐작할 수 있지요? 

 

지금은 세상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흥취를 돋우기 위해 

'Chanter, Manger, Boire, Aimer !'

'노래하자, 먹자, 마시자, 사랑하자 !'

를 써 둔 집. 그 시절 화가 문인 예술가들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확자한 흥취가 넘쳐흐릅니다.

그러나 오늘의 왁자함 속에서 그시절의 예술혼과 낭만을 찾아내고... 숨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테지요.

나 또한 그러하기 위해 멀리서 떠나와 이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나그네인걸.

 

 

언젠가 큰사위랑 함께 들어가 본 갤러리 앞에 섰습니다.

말은 갤러리, 그러나 제법 퀄리티 높은 예술품과 장삿속이 배인 공예품 미술품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일 뿐이랍니다.

파리엔 갤러리galerie라는 단어가 붙은 백화점이며 상점이 많은데, '갤러리'가 뮤지엄이랑 같거나 비슷한 용도로만 쓰여진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내게는 처음엔 이상스런 현상이었어요. 걀르리가 파리에선 백화점도 샵도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ㅎㅎ

 

이길을 따라 언덕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을 걷습니다.

 

 

저 아래 메종 로즈가 이름만큼이나 사랑스러운 크기와 빛깔로 서 있네요.

라 메종 로즈~

이집 주인이었던 '쉬잔 발라동'은 예술은 우리가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한다.라고 말했다죠.

오~ 멋진 여인. 내가 최고로 공감하는 이 한마디로도 나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아시다시피 쉬잔 발라동은 위트릴로의 어머니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 위트릴로가 살던 이집은, 분홍빛 벽과 초록색 문이 

정다움과 소박함을 안겨오는 수줍은 처녀같은, 인상적인 느낌의 집이랍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계단이있고 그위에는 한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다락방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들어가 볼 생각을 않고, 밖에 늘어서 있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답니다.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데, '나혼자'라는 용기가 나질 않아서...(내가 멍석깔아두면 뒤꽁무니를 슬슬 빼는.. ㅋㅋ)

 

 

잔 발라동,

그녀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 때부터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타는 일을 했다죠.

그러다가 어느날 그네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그일을 그만 두고

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더랍니다.

열아홉 살에 위트릴로를 낳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누군지 조차 모르는 아들은 나중에 이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위트릴로로 자라지요.

 

쉬잔 발라동은 이거리와 인접해있는 코르토 거리에 살던 작곡가 에릭 사티와 6개월 동안 동거를 했답니다.

몽마르트르에서 피아노연주를 하며 살아가던 그남자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그녀는 다리짧은 로트렉과 춤을 추고 있었다네요.

쉬잔 발라동은 에릭 사티와의 짧은 사랑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갔답니다.

에릭 사티는 그 후 한평생을 이 여인만을 사랑했다죠.

 

오, 순결하고 아름다운 영혼 에릭 사티!! 그의 순정함이 슬프기도 하여라.

그의 콕 막힌 답답함이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구나. 

 

쉬잔 발라동을 모델로 한 그림으로는 툴루즈 로트렉의 [페르낭도 서커스단에서, 여자 곡마사] 1888.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1883년 작 [부지발의 무도회] 등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여자곡마사의 얼굴이나 표정은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무도회의 여인 얼굴이나 표정은 매우 사랑스럽고

아름답지요. 한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이 그리 다르다니...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모델도 두가지 얼굴로 그려졌다지요.

인간의 마음 속은 그보다 많은 여러가지의 얼굴이 들어있으니 이상스러울 것은 전혀 없답니다.

그 많은 얼굴 중에 착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얼굴 쪽을 들어내고 행하고 살아가면 바로 그사람이 되는 거지요.

 

 

나그네의 초라한 찻잔이 새삼스레 슬프네요.

 

피부검은 청년은 내게 사진도 찍어주고, 무언가 다정스레 말을 해오기도 하고...

내 표정에 발라동과 위트릴로의 쓸쓸한 인생이 덮씌워 있었을까요?

그 우직하게 생긴 가르송(웨이터.'소년'이란 뜻도 있어요)은 내게 유쾌한 기분을 선사하려는 듯했지요.

그가 나를 찍어주기에, 나도 창문 안에 있는 그를 사진기에 담았는데, 실내의 어둠과 그의 검은 얼굴이 섞여

'밤같이 까~만' 사진이 되었더군요.ㅋㅋ

 

 

라 메종 로즈의 바깥 벽에는 이집의 메뉴가 적혀있는 나무액자가 서너 개 걸려있어요.

분홍벽에 초록 문, 초록 프레임의 액자, 새로운 어울림의 색채였습니다.

메뉴판에는 내가 주문한 카페 알롱줴는 없네요? 

처음 주문은 쇼콜라 쇼였는데, 그 친절한 가르송께서 그건 뜨거우니 다른 것은 어때?라고 하기에 

메뉴판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그냥 카페 알롱줴로 부탁했더니 그는 조금 이상스런 표정이었어요.

내가 무슨 차거운 다른 음료를 주문할 줄 알았을까요? 

한 잔의 차를 주문하는데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내가 참... 그랬습니다.ㅎ

 

 

라 메종 로즈의 실내를 들여다 보니 그곳은 협소하고, 주방으로서의 기능으로만도 넉넉잖은 공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날씨가 맑아서인지 길건너 공간까지 근사하게 활용하고 있네요.

파리에서 땅 한평 사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하고,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데 말이죠.

이 거리 인심은 옛인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나 봐요. 몽마르트르에서 뒷골목 취급을 받는 곳이라서 그럴까요?

 

 

라 메종 로즈 길건너에는 작은 포도밭이 있답니다.

옛날 이곳에는 포도밭이 많았다고 했지요? 수확되는 포도는 파리로 팔려나갔다고요.

그러나 지금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겨우겨우 포도밭이라는 이름만 붙어있을 정도의 모습으로 얌전하고 초라하게

포도밭이 있어요. 그래도 해마다 시월이 되면 이곳에서 수확한 포도로 담근 포도주로 축제를 연답니다.

재밌죠? 시음도 할 수 있고 포도주를 구입할 수도 있으니 시월 어느날 한번 가볼만 해요.

지난해에는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축제가 있었네요.

 

 

 

 

포도밭 길건너편에는 라팽 아질이 있습니다.

라팽 아질,

시인은 시를 노래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삶을.. 한탄했을 것이며 

사랑이란 허망스레 스쳐가버리는 고뇌앞에서 진실된 사랑을 꿈꾸었을 영혼들이 숨쉬던 이곳 라팽 아질.

지금은 밤 9시에 문을 열고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지요.

오래된 샹송이나 구전가요처럼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동요 비슷한 구전샹송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 이상스럽고 특이한 분위기와 노래를 들으러 가야겠다고 했더니 작은딸이 '가봐, 가서 이상한 분위기와 그곳의 특이한

시시함에 빠졌다가 와.' 라더군요. 이상스럽게 시시한 분위기. 그건 뭘까요. 꼭 가서 느껴봐야 겠어요.

 

 

라팽 아질Lapin Agile은 민첩한 토끼란 말이래요.

처음엔 이집 이름이 '암살자의 주점'이었다네요. 그 이름은 16세기 적, 앙리 4세의 사냥 휴식터였던 이곳에 포도밭이 터를 

잡으면서 주점이 생겨나고 붙여진 이름이었답니다. 그러던 것을 이주점을 자주 드나들던 앙드레 질이 이집 간판을 그렸다네요.

그는 랭보와 베를린의 친구였다죠? 앙드레 질은 1875년에 풍차앞에서 포도주병을 들고 냄비위에서 깡충거리는 토끼를 그려두고는

자기 사인 라팽 아질 Lapin a GILL을 새겨놓았는데 그것이 나중에 Lapin agile로 바뀌었답니다.

 

 

위트릴로의 모자가 살던 집 '라 메종 로즈' 바로 앞에 있으니, 위트릴로는 얼마나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겠어요.

화가 시인 문인들이 항상 진을 치고 앉아, 작업을 하고 수다를 늘어놓고 고뇌를 주고 받으며 술을 마셨겠지요. 

 

그시절에는 선술집에는 세금이 없었다고 해요.(지금은 그리도 무서운 세금!! 세금때문에 사업을 하고 싶지 않은 나라!ㅋㅋ)

그래서 싼 포도주나 싸구려 술들을 더욱 싼 값으로 공급할 수 있으니 

싸구려 술들을 실컷 마실 수 있는 이곳을

주머니 텅빈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술을 마시고 하루하루의 삶을 꽃피울 수 있었던 곳, 

바로 몽마르트르 언덕의 선술집들이었답니다.

 

 

어느 나그네도 이 유서깊은 집안이 궁금한가 봐요.

나도 어슬렁거리며 한참이나 이런저런 끝간 데 없는 생각들을 하며

한귀퉁이에 앉아서 하늘도 보다가 바람도 느끼다가 가만히 샹송도 부르다가 랭보의 싯구절을 이래저래 떠올리려

애쓰기도 하다가.... 그랬답니다.

 

요절한 천재시인 랭보가 떠난지 올해로 122년.

랭보의 시  '취한 배'라는 긴긴 시 중 몇구절을 옮깁니다.

 

(......._)

 

아이들이 가진 사과의 상큼한,

초록빛 물이 내 전나무 선체로 스며들어와

푸른 포도주 얼룩과 토사물로부터 

나를 씻기우고, 키와 닻을 훑어 내렸지

 

그래 그때부터 나는 '바다의 시'속에 멱감았어라.

별들이 젖빛으로 녹아든 곳.

초록빛 하늘을 들이마시고 있는 그곳에, 꿈에 잠긴 익사자 하나

창백하고 황홀하게 떠돌다, 때로 가라앉으니

 

(.........)

 

 

라팽 아질, 이곳은 캬바레

샹송과 유머와 시가 아직도 깃들인 곳이라고, 문 앞에 걸어둔 글귀들은 말해 줍니다그려.

그래. 와서 이곳의 그것들에 취해 보자꾸나. 머잖은 어느날에...

 

 

문닫힌 라팽 아질 마당에서는 

나의 삶 속의 영원한 詩 '어린 소녀의 맑은 눈과 발그레한 볼'이

행복을 흩뿌려주고 있군요.

아, 내 오늘의 시는 저 어린 소녀의 옹알거리는 콧노래로 흩어지고 있습니다그려~

 

 

 

위트릴로의 고뇌와 쉬잔 발라동의 슬픔은 

아직도 이 거리에서 나그네의 가슴을 적시웁니다.

반 고흐의 외롭고 고달픈 삶과 그 많은 예술가들의 한숨과 환희와 노래들은 

아직도 이 언덕에 맴돌고 있습니다.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이곳의 지나간 황금시절 옛그림자를 더듬고 어루만지듯

나는 오늘을 걷고 있는 저 할머니와 어린 소녀의 사랑 앞에서 

내 오늘을 살며시 만져 봅니다.

.

.

 

'몽마르뜨르 언덕엔 

파리의 벨에뽀끄와 함께 내 화양연화도 함께 숨쉬고 있는 게로구나',
내 꿈은 이렇게 늘 야무지게 꾸어진답니다.

 
** 몽마르트르 언덕 이야기는 자꾸만 이어집니다.
    오늘도 여기까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