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바람은 그대 쪽으로 -기형도

eunbee~ 2013. 1. 23. 19:13

 

'Letter from a Shy Lover'   Rafal Olbinski 

 

 

 

 

바람은 그대 쪽으로 
 

                                                 기 형 도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短篇의 잠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꺽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生의 벽지僻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를 다 닦아내는 박명薄明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청계산 입구 어느찻집에서...

 

 

 

마음 당기는 원두를 골라

셀프 그라인딩 후

입맛 당기는 것들로 브랜딩해서 마시는 커피의 특별한 매력.

 

그것처럼

울적한 하루가 있다면 마음넘김을 부드럽게 하는 나만의 재료를 찾아내어

한 잔의 커피를 브랜딩하는 정성으로 특별메뉴를 만들어

내 앞에 차려놓아 볼 일이다.

 

순간도, 하루도, 일년도, 인생도, 내가 그려가고

내가 만들어 내는 것

 

.

.

 

2013. 1. 23.

포근해진 공기 속으로 가느다란 비가 스민다.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가늘고 낮은 내 휘파람소리는

비를 맞는다.

 

집으로 들어오니 사방이 어둡다.

불을 켜두고 나가야 겠다,라고... 빈 집이 주는 적막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