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일요일이..
지난 이른봄 Parc de Sceaux에서, 저녁무렵의 까마귀들...
늙은 개와의 하루
詩 류 시 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올 때까지 밤새 귀를 열어 둔 날들이 지나가고
성마른 입술로 움이 터
스스로의 날갯짓으로 온기를 만드는 나비가 날아왔을 때
나는 장님이 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어린 잎사귀와 오솔길이 모이는 음력 이월의 숲
당황하는 개에게 나는 안심시킨다
별들도 낮에는 장님이 된다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한 개의 흐린 달이 더 밝다고
어딘가에 전생을 버리고 온 새가
아직 녹지 않은 눈 위에
붉은 열매를 뱉어 놓는다
가시에 상처 입은 팔꿈치를 하고서
나는 개와 함께 숲을 통과한다
공기의 투명한 원들을 지나
어느 해는 겨울이 겨울다워서
일월이 물웅덩이에게 전에 없이 냉정했었다
내가 이름을 붙여 준
아직은 감정이 덜 풀린 물웅덩이를 지나
머물다 흩어진 것들의
행방불명된 시간 앞에서
산목련 빛으로 하루를 밝히던 때가 있었다
눈꽃을 보던 눈으로
봄꽃을 바라보던 날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가 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무는 늘 그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저녁 늙은 개 몰래 나는 보았다
어둠의 불씨가 내려앉기 전
무수한 날개들이 나무의 혼을 데리고
허공 높이 날아가는 것을
비와 얼음 속에서
나무가 그토록 오래 준비한 날개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내야만 하는 벌금이 있다
시간에게 내주어야만 하는 것들이
개의 시각과 후각까지도
추운 봄
앞이 보이지 않는 개와
가끔은 불가에서 졸며
그렇게 밤새 귀를 열어 둔 날들이 지나갔다
하루종일 어디를 쏘다니다가 해질녘이 되면 둥지로 모여드는지
Parc de Sceaux 마로니에 숲에는 까마귀떼 울음소리가 황혼속에 가득하다.
나는 그들의 시끄러운 이야기에 귀기우리느라 오래도록 나의 아쉬람에 앉아 있고는 했었지.
이저녁 우리동네 숲에서도 까마귀 몇마리가 까악거린다.
가을 저녁에 듣는 까마귀 소리는 참으로 스산스럽군.
더구나 오늘처럼 구름끼고 바람불고 나뭇잎 지는 저녁에라니....
서글픈 까마귀 울음소리에, 내가 이름 붙여 불러주던 '가을이'도 보고싶어지고,
먼 이국땅 Parc de Sceaux의 까마귀 소리도 그리워지는 저녁이네.
창 밖 나무들은 언제 저렇게 헐벗었대?
눈깜짝할 새에 예쁜잎들도 떠나버렸다니....ㅠ
이렇게 모두가 가 버리는 거야?
비 온다는 예고에 등산도 포기하고, 11월 첫 일요일을 맹맹하게 보냈군.
세월 잘~ 간다.
삶은감자 으깨어 만든 샌드위치랑 커피 한잔으로 저녁이나 먹어 두자. 에혀~
2012. 11. 4.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