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옛친구들이랑...

eunbee~ 2012. 10. 31. 15:16

 

 

하얀 칼라 빳빳하게 풀먹여 검은 교복에 꿰매달고 흰운동화 뽀얗게 닦아신고 한들한들 가방흔들며

학교길 함께 걷던 동창생들이랑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우.

고향과 가까운 괴산 산막이길이라는 트레킹코스를 걷고, 괴강에서 배를 탔고, 기러기능이버섯탕이라는 걸 먹어본 날이에요.

세상밖으로 떠도는 내겐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옛친구들과의 가을여행이었답니다.

까르르~까르르~ 얼마나 많이도 웃었던지...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겨우 어제 일이건만 마치 꿈속 같아요.

 

 

옛친구중 그림 잘그리던 친구가 수필집을 펴냈네요.

평생교육원에서 요즘 배우고 있는 수필쓰기에 힘입어 책을 펴냈다고 해요.

장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가 글쓰기에도 도전을 하고 책까지 펴냈다니....

내고향 옆 산골마을의 산막이길을 걸으며 내친구의 수필을 읽어보기로 해요.

스물여덟 꼭지의 글중에 맨 마지막으로 실린 글이에요.

 

 

또 다른 그리움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돌아 몸을 움츠리게 하니 소슬바람에 가을이 묻어 왔나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에어콘을 켰는데 아침 저녁으로 긴 소매 옷을 찾게 된다.

벌써 반쯤 물든 낙엽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바람에 안겨 구르는 게 보인다.

무던히도 더워 견디지 못하고 집밖으로 나가 계곡을 찾거나 바다를 찾던 사람들도 한결 여유로운 표정들이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시골 동네 나지막한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월동준비에 바빴었다.

알싸하고 매콤한 풋고추 향과 애호박 맛이 폴폴 풍기는 장 끓는 냄새는 부엌에 뜸 드는 밥 냄새와 함께 군침을 돌게 했었다.

항상 고향마을에선 푸근한 인정이 오가고 유독 웃음이 가득함은 수확의 기쁨 때문이리라.

고향엔 싸리나무 생울타리가 정겨웠고 집집마다 고추며 콩이며 곡식을 말리는 알록달록 고운 멍석이 좋았다.

그것들을 보노라면 수확의 기쁨으로 넉넉한 마음 푸근한 인정이 마음을 부풀게해준다.

 

 

운치있는 풍경이 유난히 마음에 들던 고향 할아버지 댁 마당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면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감나무 잎과 주홍색의 감이 왜 그리도 예뻤던지....

모양과 색깔도 아름답지만 감나무는 벌레도 안 생기는 나무라 소독을 안 해 더욱 좋아했던 나무다.

떫은 맛이 나는 감을 칼로 껍질을 벗겨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반쯤 말리면 말랑말랑 한 게 너무나 달고 맛있다.

그렇게 해서 반연시를 만들었고 다 말려서 곶감을 만들었다.

들며나며 하나둘 따 먹던 그 달콤한 맛은 정말 잊지 못하겠다.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곶감, 옛날이야기에도 등장해서 우는 아기를 달래는데 울음을 뚝 그치게 했던 곶감이 아니던가!

그 시절 비취색 하늘 밑의 공기는 신선하다 못해 달콤하게 느껴졌고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열려 낭만 그 자체였다.

들녘엔 햇볕이 따뜻해 오곡이 무르익었기에 농촌마을은 더욱 사는 맛이 풍기는 바쁨이있다.

낙엽과 연해져 가는 꽃, 만추의 뜨락이 가을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감은 작렬하는 태양아래 푸르름을 자랑했는데 농염하게 주홍색의 자태를 뽐낸다.

 

 

할아버지께서는 혹시 나무에 올라갈까 싶어 염려하신 말씀인지 감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약해서 잘 부러진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느 일요일 어른들이 다 출타하시고 나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너무 심심했는데 우연히 감나무를 보니 익은 감이 몇 개 보였다.

감은 따고 싶고 키는 안 크고, 할 수 없이 바지랑대를 들고 감나무 곁으로 가 휘둘렀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거운지 몸이 바지랑대에 매달려 일렁거리며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열한 살 나에겐 전봇대처럼 무겁게 여겨진 막대였다. 감은 그길이로도 안 닿았다.

 

 

할 수 없이 나무에 올라갈 생각을 하고 겨우 안간힘을 써서 맨 밑 갈라진 곳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더 올라가지도 다시 내려가지도 못하고 감은 못 따도 좋으니 내려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

얼마를 애 태우다 급한 마음에 눈을 감고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엉덩방아를 찧고 착지는 했으나 잡았던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며 팔뚝이 크게 긁혀 피가 났다.

저녁 때 할아버지는 감이 익었으면 빨리 따지 않아 그렇다고 일꾼들을 야단치시고 어머니는 계집에가 조심성 없어 그렇다고 날 야단치셨다.

할머니는 애가 다쳤는데 그러느냐고 오히려 어머니를 책망하셨다.

 

 

감나무를 참 좋아했건만 그날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고 고향의 감나무와 바지랑대까지도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곳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알곡이 익어가는 들판과 돌멩이 하나까지 살아 숨쉬는 추억의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 같다.

겨울이 올 때 쯤 감나무에 까치 밥으로 한두 개 남겨 놓는 감은 넉넉한 인심을 아는지 말없이 까치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나무가지 끝 높은 곳에 서너 개 달린 감이 앙상한 가지에 걸려있는 모습은 넘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지금도 귀를 기우리면 고향의 까치소리가 들려오는 듯하고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떠오른다.

그러저러한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고향을 오랫동안 못 잊어 하나보다.

철없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추억 한 토막에 그때가 더 그리운 것 같다.

주홍빛깔의 매달린 감, 어김없이 등장하던 흑백의 조화로운 까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까지도 그립다.

한국의 정서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오가는 정, 나지막한 마을 뒷산 풍경 그자체가 그리움이고 향수이다.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를 떠올리며 감나무에 얽힌 추억을 더듬는다.

오늘도 사건이 있던 그날을 생각하며 세월 속의 추억들을 안고 서 있는 나를 본다.

아련한 추억 속에서 또 다른 그리움을 아스무레 미소로 더듬으며.

 

 

 

서울에서 모인 열일곱 명의 친구랑 청주에서 달려온 다섯 친구가 한데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다하더니

반쯤은 이미 앞서 갔다우. 수필집을 펴낸 친구가

"못난 지지배들은 사진에 나올 자신없으니 가버렸고 이~뿌게 생긴 우리끼리 사진 찍자." 하며 웃겼어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모임이 고등학교 동창모임인 듯해요.

하얀장갑끼고 푸짐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친구가 수필가 지망생이에요.ㅎㅎㅎ

수필가 지망생 친구는 나랑 12년을 함께 학교 다닌 친구지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줄기차게 함께 다녔어요.

그땐 그런 일이 많았어요. 이날 만난 스물둘의 친구중 여섯명이 12년 동창이니, 참으로 작은 소읍에서 자랐죠?

 

 

 

 

"정희야~ 꽃처럼 웃어봐~

꽃보다 정희가 더 예쁘네~"

이렇게 우리는 하루해를 보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할까 말까....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