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계절은 초여름
유월의 문턱인데,
시장통을 걷다가 늙은 호박을 만났다.
잘 생긴 호박들이 뎅굴뎅굴 철모르고 누워있네.
그 걸 본 내 맘속엔 호박덩이만한 눈물덩어리.
................. 맺혔다.
울엄마 작은딸인 내가
첫아기를 뱃속에 담았을 때,
엄마는, 재너머 먼 길을 걸어 가셔서 호박을 찜해 두셨단다.
'요놈을 잘 키워두면, 내가 가을에 와서 넉넉한 값 치르고 가져갈테니
정성들여 잘 키워달라'고...
가을이 오고
호박이 누렇게 익은 날
재너머 먼 길을 엄마는 또 가셨댄다.
농부는 호박을 둥그렇게 누렇게 반들반들하게 잘 키워 놓았고
엄마는 그 무거운 호박을 이고 다시 재를 넘었다.
집에 가져 온 호박은 볕 잘드는 남향마루에서 가을 햇빛을 받으며
더욱 탱글탱글 藥效를 키워가고
엄마의 작은딸 배는 호박덩이처럼 점점 불러왔다.
어느 겨울날, 먼 남쪽땅에 사는 딸에게서 출산 소식을 전해 들으신 엄마
그렇게나 커다란 늙은 호박을 가지고
기차타고 또 기차타고 또 기차타고...
그렇게 기차를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딸에게 오셨다.
그 엄마에게는 첫 손녀,
큰딸도 큰아들도 시집 장가 보내놨으나 몇 해를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서....
맘 조리고 애 태우던 엄마는 너무너무 행복하셨댄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힘든 일이라 생각할 새도 없이
그저 기쁘기만한 먼길 나들이. 품에 안은 호박덩이보다 더 큰 기쁨!!
작은 딸이 낳은 애기는 아주아주 멋진 지금의 푸른부인.
엄마는 재너머에 찜해 두고 키운 호박속을 파고 꿀을 듬뿍넣어 오래오래 쪄서
삼베헝겊에 넣어 짜서 작은딸에게 먹이며
'후루룩 마셔라, 산후 붓기도 빠지고, 몸도 가벼워 진댄다. 먹기 힘들어도 기쁘게 후루룩 마시거라.'
그 때는 몰랐다.
엄마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지금
시장통에 누워있는 저 호박을 보고
나는 후루룩 눈물을 마신다.
엄마가 그립다.
- 2009년 6월 2일, 울엄마의 첫손녀는 아주 먼 나라에 있고,
나는 내 손녀의 이름을 붙인 은비오두막에 있고,
울엄마는 하늘에 있다. 인생은 이렇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