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한 여인의 참혹한 사랑 - 영화 [퍼지]

eunbee~ 2015. 2. 21. 13:04

퍼지 

 Purge ( 2012. 핀란드, 에스토니아 )

 

감독  안티 요키넨Antti Jokinen, 1968-04-26 핀란드

출연  라우라 비른(젊은 알리데), 리이시 탄데펠트(노년 알리데), 아만다 필케(자라), 피터 프란젠(한스 페크)
 
주요등장인물 : 잉겔과 알리데(자매), 린다(잉겔의 딸), 자라(린다의 딸, 주인공 알리데의 언니의 외손녀)
                       한스 (두자매 잉겔과 알리데가 사랑하는 남자, 잉겔의 남편), 마틴(알리데의 남편, 공산당 간부)

원작 : 소피 옥사넨Sofi Oksanen의 ‘추방(Puhdistus)’ 1992년 출간. 따라서 영화도 핀란드어.

 

 

POSTER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침 노을이 번져오는 첫 화면은

이 영화를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든다.

 

한 소녀가 겁에 질려 숨차게 내닫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외딴집 어둠을 밝힐 촛불에 불을 당기는, 무겁고 어두운 표정의 늙은 여인은

"도망칠 날개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뛸 힘이 남아있는한 달아난다.

그러다 젖먹던 힘까지 빠지면 몸을 숨긴다. 그러나 누구나 빨리 달릴 수 있거나 숨을 곳이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바싹차리고 숨소리도 내지말고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독백하며 불을 밝혀두고, 

손등에 앉은 파리를 무참하게 때려잡고는 창밖을 보다가 마당에 쓰러져있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어둠을 달려온 소녀가 쓰러져있는 그집은, 알리데가 부모와 언니 잉겔과 함께 어릴적부터 살던 오래된 집,

질곡의 세월을 건너온 늙은 알리데가 이웃을 불신하며 세상을 기피하고 외롭게 혼자 은둔하는, 빨갱이집이라 손가락질 받는 외딴집.

그 집에서 다시 시작되는 '쫓기는 소녀'와 '늙은 여인'의 기막힌 만남과 그녀들의 인연.

 

 

 

 

소비에트 체제하에서의 에스토니아.

두 자매 잉겔과 알리데는 한적한 시골 작은 축제마당에서 낯선 젊은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는 언니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하지만, 동생 알리데는 형부가 된 한스를, 첫눈에 반했던 사랑 그대로

평생을 사랑하며 살게 된다. 그로 비롯된 한 여인의 참혹한 사랑 이야기.

소련 점령시 에스토니아의 시대적 암담함이 배경이 된 가족의 해체와 한 여인의 사랑을 위한 헌신적 집념.

 

 

STILLCUT

 

 

사랑하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알리데는

소련 점령군에게  잡혀가 무참하고 잔혹스럽게 당해야만 했던 처참한 능욕까지 견뎌낸다.

'나는 여기에 없는 거야, 나는 여기에 없는 거야.' 죽을 힘으로 견뎌내며 자기최면을 거는 알리데.

피투성이 속에서도 알리데의 의식위를 너울대는 환영.. 푸른나무가지에 내려앉은 밝은 빛과 새들의 우짖음...

그녀는 온몸이 찢어지는 순간에서도 평온한 환영을 떠올리는 무서운 의지와 인내를 가진 여인.

사랑의 힘일까. 그것은.

나중엔 사랑하지도 않는 당간부와 결혼까지 해서, 저항군 신세로 숨어살아야 하는 한스(형부)를 숨겨주고 보살핀다.

언니와 조카 린다도 끝내 추방 당하게 되자, 혼자 숨어있는 한스곁으로 알리데는 당간부인 남편과 함께 옮겨온다. 

 

촉망받던 당간부 마틴은 알리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끝내 알리데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마틴, 설상가상 알리데와의 결혼으로 당의 신임을 잃게 되고... 그는 알리데를 떠난다.

알리데는 한스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것과 결별하게 된다.

 

이제 외딴 오두막엔 한스와 알리데 뿐.

그간 알리데는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한스의 여권까지 만들어 두었다.

이곳을 떠나 둘만의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는 설렘과 기쁨에 들뜬 알리데.

(자기가 신고 떠날 구두를 들고 기뻐하는 그녀의 몸짓과 표정은 압권이다. 알리데에게서 처음보는 모습, 장면)

 

그러나 그것은 알리데만의 꿈.

한스는 숲으로 달려 탈출을 하려다가 총상을 입는다. 그것을 발견한 알리데는 한스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를 하다가

그의 주머니에 있던 일기를 읽게 된다. 한스는 알리데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총을 쏘고 싶어했단다.

아~ 절망하는 알리데.

 

피투성이 한스를 깔끔하게 씻기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긴다. 그리고....

컵 속의 물에 치사량의 약을 섞는다. 한스를 팔에 안은 알리데, 약을 먹이고 입과 코를 눌러 완전히 삼키게 한다.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을 거예요.

눈을 감은 한스,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오열하고 절망하며 슬퍼하는 알리데,

그녀가 그리도 바라던 그와의 입맞춤을 주검 위에 얹는다.

 

"키스 한 번이면 다 잊을 수 있었어.

다정한 손길 한 번, 평범한 산책 한 번이면 됐다고.

그 잠깐의 순간도 허락되지 않는거야.

계속 당신을 사랑했어, 평생을. 그런데 당신은....

 

당신 손을 잡고 공원을 걷고 싶었을 뿐이야. 단 하루만이라도."

 

알리데는 오열하고 절망하며, 자기손으로 숨을 거두게 한 사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는, 방안 마루밑으로 옮긴 후, 마루나무판자에 못질을 한다.

마치 자기 가슴속에 묻고 못질을 하는 것처럼.

 

 

 

한스가 러시아와 맞싸우겠다며 떠날 때, 알리데는 한스의 팔을 부여잡는다. 가지말라며.

그러나 잡힌 팔을 무심히 거두고 잉겔을 잘 돌봐달라며 떠나는 한스, 한스의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다가

알리데는 자기 손에 남아있는 한스의 체취를 들여마시기라도 하려는 듯

자기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깊은 숨을 쉰다.

- 장면은 바뀌고-

그 후, 세월은 그리도 흘러

늙어버린 알리데는 그때를 추억하며, 다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내리고

코와 입에 머물게 하더니 그손을 목아래에 둔채 한참을 회상에 잠긴다.

깊은 회한에 젖은 그 표정이라니..

이어지는 두 scene, 눈물을 잣게 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병치시키며 엮어진다.

 

 

밤을 달려 도망친 소녀 자라는 잉겔의 외손녀,

당간부들의 강요로 알리데 자신이 열 살배기에게 씻지못할 깊은 상처를 새겨야만했던, 자기 조카 린다의 딸.

인신매매단의 고난속을 헤치고 도망나온 자라를 구하기 위해 알리데는 마침내 그 마수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알리데가 외치는 말, " 모두 죽었어. 모두 다 죽었어. 한스 페크는 죽었어"

아, 여적도 그녀는 한스라는 남자를 고대로 가슴에 안고 있었다. 사랑이 이리도 참혹한건가.

 

악마같던 인신매매인에게서 벗어나게 된 자라는 이모할머니가 죽은남자의 주머니에서 찾아낸 돈을 받아들고

그녀의 외할머니와 엄마가 있는 곳을 향해 떠난다.

어둡고 공포스럽던 밤은 지나가고 먼 동녘이 밝아 오는 새벽에.

며칠전 탈출을 위해 달리던 그 길 위에서 자라는 희망이 담긴 미소를 짓는다.

자라의 뒤로 먼산 능선을 딛고 솟은 붉은 해.

굳이 의미부여를 한다면, 에스토니아의 질곡의 세월은 알리데의 것이었고, 미소를 지으며 향하는 자라의 앞날은

새로운 세상을 연 에스토니아의 앞날인 겐가. 하하, 그러할지도.

 

 

 

 

영화 끄트머리,

살인까지 감행한 늙은 알리데는 영화초반부에 읊조리던 독백을 다시 중얼거리며

온갖 이야기가 만들어진 오래된 그 집에 불을 사른다.

자라를 착취하던 인신매매인들의 시체와 함께 재로 변하겠지, 불길 속 로킹체어에서 흔들리고 있는 알리데...

그녀는 마루장 밑에서 백골로 변했을 한스를 품에 안고 허공을 나는걸까.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던 그녀,

그러나 그녀의 날개는 '무서운 사랑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훨훨 불타 연기로 피워올려, 새벽 노을속으로 날아가고 있는 한 여인의 참혹한 사랑의 날개.

 

 

소피 옥사넨의 이책도 읽어야겠다.^^

 

이 영화와 더불어,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동우님의 이메일 전송으로 고맙게 만나게 된 걸작 영화 두 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리스본행 야간열차>도 권해 드리고 싶다.

진짜 진짜 좋은 영화, 필력이 딸려서 포스팅 못함.ㅎ

원작 책을 읽은 분이거나 아직 아닌 분이거나간에, 영화를 꼭 보시길. 강추!!^^

 

더보기
소피 옥사넨(Sofi Oksanen)은 핀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1977년 핀란드인 아버지와 에스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헬싱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핀란드 연극 아카데미에서 드라마를 공부했다. 대중토론을 비롯해 각종 칼럼과 토크쇼에서 현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루어 왔으며, 양성애자로서 발틱 3국과 러시아의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다양한 활동들로 주목받아 왔다. 2003년 핀란드로 이민 온 에스토니아 여성의 삶을 그린 첫 소설 《스탈린의 소》로 젊은 핀란드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독창적이고도 정치적인 이 데뷔작은 “혐오스러운 동시에 숭고할 정도로 시적”이라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핀란드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루네버그 상에 후보로 올랐다. 2005년 레즈비언 커플 사이의 불안과 혼동, 폭력성을 담은 두 번째 소설 《베이비 제인》을 발표하며 성공을 이어갔다. 2007년 그녀의 첫 번째 창작극 《추방(Puhdistus)》이 핀란드 국립극장에서 상연되어 호평을 모은 후, 이듬해 이를 바탕으로 한 세 번째 소설 《추방》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핀란디아 문학상을 비롯해 루네버그 상, 최연소 노르딕 문인협회 문학상, 프랑스 FNAC 문학상과 프리 페미나 에트랑제 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2년 출간한 네 번째 소설 《비둘기가 사라졌을 때》도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핀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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