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BA 2012

배급소에서

eunbee~ 2012. 2. 6. 21:40

 

 

트리니다드Trinidad는 한동안 쿠바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였다지요.

트리니다드산맥의 남쪽 능선에 자리하고 있어, 서늘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며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곁에 두고 있으니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그리고 식민시대 분위기를 잘 보존하고 있으니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에는 충분한 매력이 있지요.

지도의 `트`가 트리니다드 위치.ㅋㅋ

도시전체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위한 전초지로 삼고 건설한

500년 전의 건축물과 그 시대의 도시 분위기가 잘 보존된 매우 정갈하고 아름다운 보석같은 작은 도시예요.

 

 

트리니다드는 도자기 생산으로도 제법 유명한가 봐요.

우리네 수준에서 보면 참으로 빈약하고 솜씨없고 규모나 생산품의 품질면에서도

보잘 것 없지만, 이런저런 물건을 구워내고 있습니다.

 

 

장인은 자랑스럽게 작업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작품들도 보여주지만 내 눈과 맘에는 영 시시해 보였지요.

이곳 도자기라는 것은 우리네의 초벌구이 같은 느낌을 주는 붉은황토색의 작품들이었어요.

그보다 갖구워낸 듯한 싱싱한 맛을 주는 이집 지붕의 기와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기와지붕이 어찌도 그리 마음에 드는지....

 

 

나는 볼 것없는 도자기공장에서 나와서 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거리에는 관광객을 싣고온 차들의 공회전으로 시끄럽고 도로에 인접한 집 테라스에는

수공예품인 식탁보와 뜨게질한 옷가지들을 파는 아낙들이 호객을 하고 있습니다.

 

 

과일과 음료를 파는 이런 작은 가게가 거리마다에서 자주 보여요.

 

도자기공장에서 일행이 나오자 우리는 쿠바사람들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배급소`를 보기위해

다시 차에 올라 트리니다드의 중심거리로 향했습니다.

 

 

트리니다드처럼 아름답고 유서깊은 조그마한 도시에서 쿠바사람들의 배급소를 찾은 것은

어쩌면 예정된 충격이기도 하고, 보여지는 겉 속에 숨겨진 속살을 더듬을 때의 생경스러움에서 오는 낯선 확인같은

그런...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물건들이 너무도 조악스럽고 초라해서 서글펐어요.

그리고 진열된 물건의 양은 왜 그리도 빈약한지....ㅠ

 

 

썰렁한 배급소가 허허로운 마음에 슬픔을 안겨, 마냥 씁쓸하고 애잔하고 심란스러웠지요.

배급소에서 배급을 받고 산다는 것 자체도 나를 슬프게 했건만 이렇게 허전한 물건들이라니...ㅠ

그리고 그들은 배급품으로만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수에 따라 일정량이 정해져있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싼값에 사서 충당을 한다고 해요. 그래도 부족한 것은 개인이 다른 상점에서 능력껏 구입해서

생활 한다니 곤궁스럽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대부분이랍니다.

 

 

 

 

 

 

 

슬프죠?

세상사람들의 현실을 잘 살피고.. 아껴쓰고 조금 줄여먹고 알뜰히 살아야 겠어요.

 

각 가정에 나누어준 배급수첩

 

그나마 이제는 그 배급량이 점점 줄고 `배급소`의 기능도 축소되고 있답니다.

일부에서는 배급정책을 폐지하자는 움직임도 있다는데, 아직은 은퇴자나 실업자를 위해서

존속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안내인은 `모두가 가난해요`라는 말을 자주하며 쓸쓸히 웃지요.

 

트리니다드에서도 비누나 볼펜 적은화장품 등 생활용품을 요구하거나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안내인이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준다면 나로써는 좋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한 번 주면 이곳에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따라붙는 그들을 말릴 수는 없을 거예요.`라고...

 

그말을 듣고 오래전 인도에서 똑 같은 말을 하던 찬드라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인도여행 안내인이었던 대학생 찬드라도 자꾸만 따라붙는 귀찮은 박시스의 어린이들을 여행자들이

귀찮아하자,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구걸하는 그들 자신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그런 버릇을 안긴

여행자들 일까요.`라며 알송달송한 여운이 있는 말을 하던 그가..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많음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관리하고 처리하느라 애써야 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최소한의 것도 부족하여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곳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들이 공평하게 해결 될 수 없는 우매함과 어리석음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아름답고 고풍스럽다는 트리니다드에서 아로새겨진

이기적이고 슬픈 인간들의 단면을 헤아리게 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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