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파리에서

낭만적 삶의 미술관. 조르주 상드의 방

eunbee~ 2010. 12. 5. 01:35

 

낭만적 삶의 미술관, 세 번째 방입니다.

Salon George Sand

 

조르주 상드 (1804~1876)

 

 

 조르주 상드의 손녀가 1923년에 파리시에 기증한 기념품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녀의 손녀도 작가였다죠?

조르주 상드와 그가족이 사용하던 가구들, 장식소품들과

그녀의 조부모 초상화를 비롯한 가족들의 초상화가 있어요.

 

 

이 방으로 들어가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천정에 매달린 간결한 샹들리에도 보고...

 

 

시선을 아래로 이동해서 탁자 다리의 장식도 감상하며

바닥 카펫도 살피고...ㅋㅋㅋ

 

 

그러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겠습니다.

이 사진은 입구에 비치되어있는 브로셔에 있는 것을 다시 옮겨왔지롱요.

왜냐구요?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부터 숨은그림찾기놀이를 합니다.

 

 

브로셔에 있는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 중

다른 것, 다시 말해서 사라져 버린 것 찾기.

 

 

찾았나요?

오귀스트 샤르빵티에가 그린 '조르주 상드의 초상화'가 없네요.(1837년 경 작)

또 하나, 작은 탁자 위의 '오리엔탈 댄서 Amani' (1838년 작)라는

Jean-Auguste Barre의 브론즈로 된 조각품도 없어요.

Jean-Auguste Barre는 이시대에 유명했던 파리 태생의 조각가.

 

그러니 미술관에는 갈 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겨 두어야 겠네요.

저렇게 매력적인 상드의 초상화가 없어서 매우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브로셔에 있는 것을 복사해서 올려봤습니다.^*^ 작지만...

 

 

수틀(繡틀)을 발견하고는 반가움과 궁금함이 몰려 왔답니다.

나는 자수를 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지거든요.

저 수틀 앞에 조르주 상드가 앉아있던 날도 있었을까요?

 

 

 

 

조르주 상드 조부모와 가족의 초상화

 

 

1810년 경, 조르주 상드의 어린날의 모습. 파스텔화

 

 

조르주 상드의 이모. 파스텔화 (1810년 경)

파스텔화로 된 두 초상화는 입구 오른쪽 벽에 걸려 있었다우.

 

 

쇼팽을 찾아 나섰는데,

 근사하게 마련된 조르주 상드의 방은 만날 수 있었으나

쇼팽의 흔적은, 작은 왼손마져 볼 수가 없어서 서운했답니다.

그래서 안내책자에 있는 사진일망정 이렇게 올려 봅니다. 하핫~

 

1849년 경에 석고로 뜬 쇼팽의 손,

죽기 직전이었네요. 1849년 10월 30일에 페흐 라세즈에 묻혔으니까요.

손이 어쩜 저리도 가냘픈지요. 저 손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

 

미흡하나마 이렇게

'살롱 조르주 상드' 관람을 마칩니다.

 

우린 이제 네 번째 방으로 가야 합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만나요.^&^

 

더보기

George Sand 1804.7.1~1876.6.7

파리에서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부 프랑스의 베리주 노앙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1] 16세 때 지방의 귀족인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였으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고, 1831년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파리로 옮겼다. 1832년 친구의 권유로 신문소설 《앵디아나》를 써서 일약 유명해지면서부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문인들 사이에 끼어 문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생활은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특히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적인 연애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사랑의 여신’이었다.[1] 그녀의 일생은 모성애와 우애와 연애로 일관된 자유분방한 생애로서 그야말로 낭만파의 대표적 작가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선각자적인 여성해방운동의 투사로서도 재평가되고 있다.

 

[맘에 안들지만 옮겨봅니다. 더 많은 자료 검색해 보시길 바라며..^*^]